등록 : 2013.04.02 19:38 수정 : 2013.04.0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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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해씨

한국전쟁 피해자 통합단체 첫 상임대표 양용해씨
양분된 전국유족회 통합총회 이끌어
“오해풀고 진상규명·명예회복 함께”
전국 흩어진 피해자 주검도 찾아야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이란 목적은 똑같은데, 유족회가 양분돼 있다 보니 힘이 분산되고 갈등이 증폭됐어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서로가 대화를 통해 그동안의 오해를 풀고 통합하게 됐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에서 열린 통합 정기총회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 첫 상임대표 의장으로 뽑힌 양용해(82)씨는 2일 한국전쟁 피해자 단체 통합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80대의 나이가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열정적인 그는 11년째 제주북부 예비검속 희생자 유족회를 이끌고 있다.

그동안 전국유족회는 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와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이렇게 둘로 나뉘어 있었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우리끼리 갈등을 빚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양 의장은 두 단체의 통합을 위해 각 대표 3명씩을 뽑아 3개월 동안 통합작업을 벌인 끝에 만장일치로 2년 임기의 의장에 추대됐다. 총회는 전국유족회 산하 101개 유족회 대표 가운데 위임자를 포함해 모두 95명이 참석해 통합 단체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양 의장은 크게 두 가지 활동계획을 설명했다. 우선 최근 법원이 과거사 관련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판결을 내놓는데, 희생자 및 유족들에 대한 배상금액이 판결마다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떤 소송은 기각하는가 하면,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과거사 소송 관련 배상금액이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에 이르기까지 다르게 나오고 있다. 인간 생명의 가치는 동등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또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을 부모·형제·자매의 주검을 찾아야 한다”며 유해발굴 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에 살던 양 의장은 20살이던 1950년 7월 아버지(당시 44살)와 같이 식사하던 도중, 말을 타고 온 경찰지서장이 아버지의 손을 묶고 말꼬리에 달아매어 끌고 가는 것을 눈 앞에서 지켜봤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했다.

예비검속 대상자의 자녀라는 연좌제는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초등교원양성소를 졸업해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데 경찰에서 ‘저 사람 빨갱이’라고 문제삼아 그만둬야 했다. 스승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군에 입대했지만 이번에는 신원조회에 걸려 중도에 제대한 뒤 다시 입대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제대 뒤 지역의 재향군인회장에 출마했을 때도 중앙정보부에서 꼬투리를 잡아 또 곤욕을 치렀다.

제주/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