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20 20:21수정 : 2014.11.21 10:14

그림 박재동 화백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 18번째 생일 맞은 김혜선에게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내 딸 혜선아.


오늘은 너의 18번째 생일이야. 처음으로 엄마 품에 안기던 날 기억하지? 가슴 벅차고 행복했던 그 순간, 그 느낌은 그대로인데 우리 딸은 내 옆에 없구나. 너는 엄마의 보물 2호라고 언제나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곤 했었지.


사고 난 지 일주일 만에 차가운 몸으로 엄마 품에 돌아온 우리 딸. 다시 돌아와 달라고 목이 터져라 네 이름을 부르고 팔다리를 주물러도 너는 끝내 엄마의 울음에 답하지 못하고 떠나 버렸어.


가엾은 내 딸, 혜선아. 그 고통의 길에서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수도 없이 엄마를 불렀을 내 딸, 힘들게 떠나던 그 고통의 길에 함께하지 못하고 울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엄마를 용서해줘.


혜선아, 네가 없는 집안은 고요한 침묵만이 흐르고 주인 없이 돌아온 신발 한 짝은 네 책상 위에서 너의 아픔을 전해주고 있구나. 길을 걷다 교복 입은 여학생만 봐도 네 생각에 눈물이 흐르고, 재잘거리며 서너 명씩 같이 다니는 학생들만 봐도 “내 딸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져 내린단다.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거라며 친구들과 약속도 하지 않던 따뜻한 마음의 내 딸. 직접 만든 케이크로 아빠의 생일 축하 파티도 해주고, 엄마 힘들다며 가끔 교복도 직접 빨아 입던 착한 내 딸이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아.


엄마 딸, 혜선아. 너와 함께 밥도 먹고 쇼핑도 하고 같이 침대에 누워 밤새 수다 떨다 잠들고 싶은 바람이 엄마의 욕심일까? 앞으로 너 없이 살아갈 일상이 너무 두렵고 무섭기만 하구나. 아직도 엄마는 “다녀왔습니다”하면서 문을 열고 들어설 것 만 같은 너를 그리워하는데, 거짓말 같은 이 현실은 네가 옆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있구나.


우리 딸, 꼭 시각디자이너가 되겠다며 열심히 노력했는데 여력이 되지 않아 반대를 했었지. 시각디자이너의 꿈을 접고 어렵게 다른 길을 찾는 너를 보며, 많이 미안하고 가슴 아팠단다. 해양대학교에 진학해 배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던 너의 선택이 이렇게 슬픈 꿈이 될 줄은 몰랐구나.


혜선아, 다음 생에도 엄마 딸로 와줘. 그때에는 네가 하고 싶다던 시각디자이너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엄마가 꼭 도와줄게. 영원히 엄마 편이자 친구 같던 딸. 매사에 자신감 넘치고 활기찬 성격의 딸이 엄마는 언제나 자랑스러웠어. 주말이면 집에 오는 언니가 책상 위에 올려주는 간식 맛있게 먹어주고, 가족이 그리울 땐 언제 어떤 모습으로든 우리 옆에 머물러주렴.


네 방 침대에 전기장판도 깔아 놓았어. 따뜻하게 행복한 꿈만 꾸었으면 좋겠구나. 혜선아, 엄마 딸로 살아준 18년 고맙고 많이 행복했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와의 소중한 시간 가슴에 묻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 게을리하지 않을게. 고통과 슬픔일랑 모두 내려놓고 “언제나 행복해야 해”를 강조하던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란다. 부디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행복해야 한다.


미안해, 혜선아. 사랑해, 혜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