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08 20:16

잊지 않겠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꿈꾸던 예지에게

사랑하는 내 딸, 친구 같은 내 딸 예지야.

수학여행을 갔다 와서 토요일에 엄마와 영화 보러 가기로 했는데…. 네가 좋아하는 콘서트도 같이 보러 가기로 했는데…. 예지를 못 본 지 벌써 230일이 넘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구나. 엄마는 아직도 예지가 수학여행에서 돌아올 것 같은 착각 속에 매일 살고 있단다. 엄마, 아빠가 맞벌이하느라 네가 어린 동생과 놀아주고 밥 챙겨주느라 친구들과 자주 놀러가지도 못하고…. 그래서 엄마는 아직도 예지에게 미안하고 미안해.

수학여행 가기 전날 외할머니 생신 때 예지가 용돈 모아 사준 영양크림을 할머니는 아직도 못 쓰고 바라만 보며 울고 계신단다. 통통하다고 사진 찍는 거 싫어해서 사고 나기 전 예쁜 벚꽃 나무 앞에서 너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이 마지막 선물이 되어버렸구나. 너의 동영상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으련만…. 엄마는 너의 목소리를 잊어버릴까 봐 기억하려고 매일매일 노력한단다.

그 차디찬 컴컴한 바닷속에서 구해달라며 엄마, 아빠를 찾았을 너를 생각하면 아직도 엄마는 잠을 잘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어. 뜨거운 물에 씻을 수도 없더구나. 엄마는 너 따라가고 싶어도 아직 갈 수가 없어. 네가 왜 억울하게 죽었는지 알 수 있을 때까지 엄마는 계속 싸우고 밝혀 나가려고 해. 그때까지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며 쉬고 있으렴.

오늘이 네 생일인데 너 없는 생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구나. 너무 보고 싶고 안아 주고 싶고 사랑한단 말을 하고 싶은데 꿈에라도 한번 나타나주렴. 사랑한다 내 딸 예지.


박예지양은


단원고 2학년 9반 박예지(17)양은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컴퓨터를 잘 다루던 아이였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하고 있는 작은엄마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이런 꿈이 생겼다.


예지는 집에서 초등학교 5학년 남동생 하나를 둔 맏딸이었다. 어릴 때 남동생이 어린이집을 마치면 늘 데리러 가던 누나였다. 맞벌이를 하는 엄마, 아빠를 대신해 동생에게 음식을 해주고 “걱정하지 말라”며 자기가 만든 음식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보내던 딸이었다. 어릴 적부터 모아둔 세뱃돈으로 아빠한테 중고차를 선물해주기도 했다.


예지는 단원고에서 늘 함께 어울려 놀던 8~9명의 친구가 있었다. 모두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났지만, 살아 돌아온 친구는 2명뿐이었다. 2학년 1반 조은화(17)양은 아직도 가족 품에 안기지 못했다. 세월호 사고로 숨진 2학년 3반 김시연(17)양은 예지와 어릴 적부터 함께 커온 사촌이다. 예지와 시연이는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함께 잠들어 있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