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禹지사 중재로 ‘화해’ 점심식사…현충일-4.3위령제 교차참석 약속
우 지사 “경찰도 가해자 겸 피해자”…‘화해·상생’ 4.3정신 65년만 결실(?)
▲ 지난 65년을 철천지원수처럼 반목 속에 살아야 했던 4.3유족들과 경우회(경찰 출신 모임)가 24일 처음으로 밥상에 마주 앉았다. 우근민 지사가 마련한 점심식사 자에서 양측은 앞으로 현충일 행사와 4.3위령제에 서로 참석, 순국선열과 4.3영령들의 넋을 기리기로 했다. ⓒ제주의소리 |
닭과 지네, 개와 고양이 같았던 사이다. 지난 65년을 철천지원수처럼 살아왔던 그들이다.
1948년 제주 섬에 살육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이후 65년을 반목 속에 살아야 했던 4.3유족들과 경우회(경찰 출신 모임)가 화해를 했다. 내년부터는 경우회가 4.3희생자 위령제에 참석, 영령들의 넋을 기리기로 했다. ‘화해와 상생’의 4.3정신이 65년 만에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제주도경우회와 제주4.3유족회 전·현직 임원들이 24일 낮 제주시내 모처에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멍석은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깔았다. 우 지사가 양 쪽에 “식사나 한번 하자”며 자리를 마련했고, 이에 경우회와 4.3유족회가 흔쾌히 응하면서 자리가 성사됐다.
경우회에서는 현창하 회장 등 5명이, 4.3유족회에서는 정문현 회장 등 4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처럼 그 동안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 척을 졌던 사이가 밥상머리에 함께 앉은 것은 65년 만에 처음이다.
사실 그 동안 4.3유족들과 경우회는 ‘닭과 지네’, ‘개와 고양이’와 같은 사이였다.
경우회는 그동안 4.3해결에 앞장서서 ‘딴지’를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3특별법과 진상조사보고서를 전면 부정했을 뿐 아니라 4.3희생자 결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는가 하면 희생자 결정의 무효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쉼 없이 제기했다.
4.3을 ‘무장폭동’, 4.3평화공원을 ‘폭도 공원’으로 매도해 4.3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도 했다. 보수세력인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지난 5년 동안 ‘4.3흔들기’는 더욱 노골화했다.
‘100% 대한민국, 국민대통합’을 내건 박근혜정부 들어 차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지난 5월6일 열린 4.3유족회 서귀포시지부 6주년 창립행사 때 경우회 임원들이 참석, 화해의 손을 먼저 내밀었다. 1주일 뒤에 열린 제주시지부 6주년 창립기념대회 때도 경우회 임원들이 참석했다. 60년 넘게 닫혀있던 마음도 봄눈 녹듯 녹아내렸다.
이날 오찬에서 현창하 경우회장은 “지난 4.3유족회 제주시지부 창립식에 참석했을 때 유족들이 2번이나 기립박수를 해줬다. (4.3유족들이) 가슴으로 대해줘 이제야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4.3유족들도 이에 화답하는 차원에서 다음달 6일 열리는 제58회 현충일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러자 경우회는 내년 66주년 4.3위령제에 초청만 해주면 흔쾌히 참석하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낮 12시에 시작한 이날 식사 자리는 오후 1시20분쯤까지 이어졌다. 밥상머리에서는 시종일관 ‘화합·상생’을 이야기하며 화기애애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심지어 경우회와 4.3유족회가 ‘화합’ 기자회견을 한번 추진하자는 말까지 나왔다는 후문이다.
우근민 지사도 “어떤 의미에서 경우회도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다. 제주가 발전해나기 위해서는 경우회와 4.3유족회가 화합해야 한다. 앞으로는 한 목소리를 내자”며 적극 화해를 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두 조직이 진정으로 화해하고 상생하기 위해서는 4.3관련 송사부터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순서라는 지적도 나온다.
65년 만에 마주 앉은 경우회와 4.3유족회가 진정으로 4.3정신인 ‘화해와 상생’을 꽃피울 수 있을 지 앞으로의 행보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제주의소리>
<좌용철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