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02 21:43

잊지 않겠습니다

한문 선생님 되려 했던 세영에게

내 가슴에 품어 함께 살아 보고 싶은 못다 핀 꽃, 우리 세영이에게.

 벌써 계절이 바뀌고 있단다. 세월호 대참사가 일어난 지 197일 만에 나온 3반 친구 지현이가 생일날 인양이 되었단다. 참 기막힌 일이지?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직도 바닷속에서 못 나온 2반 친구 다윤이와 나머지 8명이 하루빨리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대참사가 세월호 유가족들 만의 일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잘 지내고 있는 거야? 너희를 편안하게 해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는 것이 미안하고 안타깝단다. 봄 냄새 물씬할 때 떠났는데, 살갗을 파고드는 어느덧 한기가 느껴지는 겨울로 접어드는구나.

 그 흔한 말 한 마디도 없이 떠나버린 우리 세영이. 살려고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다했을 너를 인양된 모습에서 뼈저리게 보았단다. 눈이 감기질 않아서 핫팩으로 여러 번 녹이고 쓰다듬고 하니 그제야 감긴 너의 그 예쁜 눈을 보았다고 아빠가 며칠 전 말해주더라. 지금도 그 사진 속의 너는 좀 피곤해서 자는 듯한 모습인데, 너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날마다 세영이 사진 보며 독백 아닌 독백을 하곤 한단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잘 잤어?”, 퇴근 후엔 ”엄마 잘 다녀왔어. 하루 잘 보냈어? ”, 밤엔 “잘자!”하고. 이러다가도 너무 슬퍼서 오열도 하고 몸부림도 쳐보고, 참 기막힌 이 현실이 꿈이었으면 한단다. 남긴 너의 사진과 영상으로 위로도 해보고, 네가 있는 분향소와 납골당에서 너를 보고 느끼는, 그런 시간의 연속이란다.

 적당한 크기의 계란형 얼굴에 어떤 헤어스타일도 다 어울리는 반듯한 이마, 얇고 세련된 쌍꺼풀에 새까만 눈동자와 커다란 눈매, 그린 듯 자연스런 눈썹과 긴 속눈썹, 높지도 낮지도 않게 오똑하고 매끄러운 콧날과, 라인이 또렷하고 두툼한 선홍색 입술, 입술 밖으로 살짝 보이는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 보일 듯 말듯 보이는 보조개, 쫑긋 솟은 귀와 피어싱이 잘 어울리는 귓볼, 뾰족하지 않은 U라인 턱 선과 솜털이 뽀송뽀송한 가냘프고 긴 목선, 하얗고 긴 손가락, 윤기 있고 굵은 건강한 흑발과 하얀 피부를 가진…. 엄마 눈엔 어느 곳 하나 빠질 것 없이 예쁜 우리 딸 세영이였단다. 참 예쁜데 우리 세영이 예쁘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지? 이리 빨리 가버릴 줄 알았다면 더 많이 해주는 건데. 무엇하나 후회되지 않는 게 없구나.

 1997년 12월 22일에 태어나서 2014년 4월 20일까지 짧은 생을 살았구나. 너의 웃는 모습이, 너의 목소리가 무척 그립다. 사랑받을 시간도, 사랑해줄 시간도 너무 짧았구나. 늘 마침표도, 답도 없는 시간을 보낸 것 같아서, 우리 세영이를 생각하면 늘 애잔하다. 내 가슴에 많이 품어주지 못해서, 충족하게 해주지 못해서, 더욱 가슴이 아리다. 그동안 사느라 참 많이 애썼지? 이제는 우리 세영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인피니트, B.A.P의 음악을 들으며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밝은 곳에서 환하게 지내길 바래. 지금도 엄마는 네가 좋아하는 음악 들려주고 있는데, 잘 듣고 있는 거지?

 예쁜 딸 세영아. 꼭 쥐고 피워보지도 못한 고운 꿈 이제는 맘껏 피우길 바랄게. 봄날엔 파릇한 아지랑이로 피어나고, 여름날엔 화사한 햇살로 피어나고, 가을날엔 노랗고 불그스름한 단풍잎으로 피어나고, 겨울날엔 하얀 눈꽃으로 피어나길. 꽃 심으면 안 필까 걱정하고, 꽃 피면 또 질까 걱정한다는데, 이제는 못다 핀 꽃 한 송이 예쁘게 활짝 피우기만 바란다. 세상에 둘도 없는 딸, 아빠와 엄마, 보디가드로 든든한 동생 대연이도 잘 지켜보고 잘 살펴봐 줄 거지?

 꿈에서 친구들한테는 많이 다녀간 모양이던데, 엄마한텐 언제나 오려고 그러니? 네가 남긴 휴대폰에서 친구들 소식도 듣곤 한단다. 가끔 엄마가 답을 해줘서 친구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고, 휴대폰에서 본 우리 세영이는 참 인간관계를 잘하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단다. 우리 세영이의 삶이 담긴 유품(휴대폰)을 남겨줘서 정말로 고맙다. 카톡 마지막 프로필 문구가 되어버린 ‘조으다’ 처럼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다음 생엔 부잣집에서 태어나고 싶다던 우리 세영이의 소원은 이뤄졌을까? 또 친구 같은 엄마도 만났을까? 예쁘고, 곱게 잘 지내고 있어라. 이 엄마는 얼마의 세월이 지나면 널 만날 수 있으려나? 내 가슴에 너를 품고 살고는 있지만, 우리 세영이랑 함께하지 못했던 세월이 참으로 서럽다.

 예쁜 딸, 세영아. 엄마는 네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사랑했고, 더 많이 예뻐했다.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해 줄게. 사랑한다. 내 딸 한 세영아. 지금 이순 간도 너무너무 보고 싶다. 사랑해 잘 지내고 있으렴.♡

 2014년 11월 초 겨울의 문턱에서 엄마가.

 한세영 양의 남동생 편짓글

 누나, 잘 지냈어?

 어느덧 벌써 100일이 지나고 더 지났네. 왜 이리 빨리 갔어?

 아직 할 것도 많고 꿈도 많았잖아? 부디 여기서 이루지 못한 꿈, 거기서는 다 이루고 살길 바랄게.

 내 꿈에 한번이라도 나와줘. 우리 다시 만나면 여기서 있었던 일들 다 이야기해 줄게.

 누나, 너무 보고 싶다. 잘 지내야해. 편히 쉬어 누나. 사랑해. ♡

 누나를 사랑하는 동생 대연이가


한세영양은

단원고 2학년 2반 한세영(17)양의 꿈은 한문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 한문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 이런 꿈이 생겼다고 한다. 그림을 잘 그렸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해서 화가의 꿈은 포기해야만 했다. 집에서는 좀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밖에선 친구 없이 못 사는 활달한 아이였다.


세월호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한 생존 학생이 세영이의 휴대전화를 부모에게 전해줬다. 복도에 떨어져 있던 걸 주워서 갖고 나온 것이다. 휴대전화 안에는 딸이 그동안 찍었던 사진과 동영상이 들어 있었다. 휴대전화를 먼저 부모에게 보낸 세영이는 4월20일 돌아왔다.


세영이의 아빠는 딸의 휴대전화에 있던 사진과 동영상 등으로 10여분짜리 추모 영상을 만들어 지난 6월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사고 소식을 전해듣고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온 아빠의 모습과 세영이의 어린 시절, 부모가 보낸 영상편지 등이 담겨 있다. 세영이는 지금 서울 동작구 달마사 봉안당에 잠들어 있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