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09 21:06수정 : 2014.11.10 11:21

잊지 않겠습니다

꿈 많았던 채원에게 엄마가

사랑하는 내 딸, 채원아.

올해는 은행잎도, 단풍도 너무 예쁘게 물들었구나. 하지만 아름답다며 감사하다고 느껴야 하는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아무것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내 딸은…. 그러나 오늘은 예쁜 단풍을 보면서, 내가 아닌 채원이가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채원이를 어이없이 보내고 나서 엄마에게는 새로운 하루하루가 시작되었단다. 채원이와 늘 함께하던 일상에서 이제는 채원이가 없는 일상을 보내야 한단다. 매순간 새로운 시작과 도전을 반복하는 것만 같단다. 채원이 없이 견뎌야 했던 이번의 길고도 긴 추석은 잊을 수가 없다.

든든한 내 편이었던 내 딸, 채원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딸”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차마 부를 수가 없구나. 가장 소중하다면서 무기력하게 채원이를 보냈구나. 너무도 부끄러운 부모이기에,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차마 소중하다는 말을 쓸 수가 없구나. 그저 엄마 딸로 와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늘 표현이 부족한 엄마였지만, 이 세상 어느 부모 못지않게 채원이를 많이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다.

엄마에게 주어진 시간 허비하지 않고 성실히 살게. 언젠가 우리가 만나면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면서 우리가 만날 때를 기다리며 살게.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채원이에게, 엄마가.


길채원양은

단원고 2학년 2반 길채원(17)양은 꿈이 많은 아이였다. 초등학교 선생님, 개그우먼, 연예인, 유치원 선생님 등 매번 꿈이 바뀌었다. 중학교 2학년 남동생을 둔 첫째였지만, 또래 아이들보다 순수하고 착해서 인어공주나 산타클로스가 나오는 동화를 좋아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엄마에게 “인어공주와 관련해서 새로 나온 영화나 만화 다운받아 놓으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에는 산타클로스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나서 “역시 산타클로스는 있다”며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채원이는 늘 입버릇처럼 멋진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모태솔로’가 될까봐 걱정이 많았던 천진한 여학생이었다. 친구들과는 주말만 되면 맛집 투어를 다니던 밝은 아이였다. 엄마와 성당에 열심히 다녔던 채원이의 세례명은 에스텔이었다.


4월15일 채원이는 매년 여름 가족끼리 여행 갈 때 늘 사용했던 연두색 가방을 메고 수학여행을 떠났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가족들과 또 여행을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채원이는 세월호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사고 13일째인 4월29일 싸늘한 주검이 되어 가족 품에 안겼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