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0.21 20:51

잊지 않겠습니다

광고디자이너 꿈꿨던 딸에게 아빠가


사랑하는 지윤이에게.


너를 번쩍 안아 내 손에 안고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날 차로 학교에 바래다주었던 기억까지,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 되었구나. 너를 바래다준 것이 마지막이 될 줄도 모르고,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하고 이제야 이렇게 편지를 쓴다.


아빠는 우리 지윤이 정말 사랑한다. 우리 지윤이에게 해준 것이 없어 더 미안하고, 우리 지윤이 너무 보고 싶다. 지윤아 어떡하니…. 지금이라도 “아빠” 하고 달려올 것만 같아서 매일 아침 너의 책상에서 네가 사용하던 컴퓨터를 어루만지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단다.


남아 있는 우리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니? 너의 영혼이, 너의 마음이 그 지옥 같은 차가운 바닷물에서 공포와 두려움으로 보냈다는 생각만 하면 정말 가슴이 찢어진다.


나쁜 어른들 혼내줘야지. 지윤이가 아빠한테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빠는 예전처럼 안 하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볼 거야. 너 없는 세상에서 잘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더 노력할게. 지윤아, 사랑한다. 아빠가.



박지윤양은

“할머니, 나 죽을지도 몰라.”


세월호가 기울며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던 4월16일 오전 9시께, 단원고 2학년 3반 박지윤(17)양은 친구의 휴대전화로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지윤이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한 시간 뒤 자신의 휴대전화로 외할머니에게 ‘ㄹ’이라는 짧은 문자를 남겼다. 지윤이는 무슨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늘 방에서 컴퓨터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광고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외할머니와는 단짝 친구처럼 지냈다. 엄마와 아빠가 맞벌이를 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외할머니가 지윤이를 많이 돌봐줬다. 늘 지윤이를 잘 이해해주는 외할머니였다.


지윤이는 <슈퍼스타K5> 출신 가수 박시환을 좋아했다. 외할머니에게만 이야기해놓고 몰래 박시환 콘서트를 보러 가기도 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엄마와 아빠 몰래 외할머니에게 3만원을 얻어 박시환의 앨범을 산 뒤 친구 집 주소로 주문해놨다.


5월5일 물 밖으로 나온 지윤이는 끝내 이 앨범을 뜯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박시환이 지윤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찾아와 조문하고 이 앨범에 사인을 해줬다. 지윤이가 박시환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아빠가 박시환과 연락이 닿는 사람을 수소문해 딸에게 해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