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거창양민학살사건 다룬 영화 '청야'의 안미나 "사람에 초점 맞춰야 했다"

13.12.23 11:38l최종 업데이트 13.12.23 12:05l
▲ <청야> 에 출연하는 안미나
ⓒ 마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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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양민학살사건을 다룬 영화 <청야>에서 배우 안미나가 연기하는 지윤은 마치 탐정 같은 캐릭터다. 한 장의 사진을 단서로 지윤과 그의 가족들은 할아버지 이노인(명계남 분)이 거창사건과 관련돼 있었다는 충격적인 과거를 하나씩 발견한다.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거창사건의 유족에 대한 미안함이 교차하는 지윤이라는 캐릭터를 안미나는 몸짓보다는 눈빛으로 연기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촬영을 하며 눈이 붓지 않은 적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호소력 짙은 눈빛으로 우는 장면이 많았다. <청야>의 안미나를 20일 여의도에서 만났다.

- 지윤은 할아버지에게 감정이입하기 힘든 손녀 세대다. 그럼에도 할아버지의 사연에 감정이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할아버지 세대에 일어난 처참한 상황을 알게 된 다음의 보편적인 휴머니즘이랄까. 할아버지를 붙잡고 우는 장면이 있다.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느낌보다는 할아버지에게 원망 섞인 감정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아는 할아버지는 인간적이고 자상한데 거창사건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치매로 기억을 하지 못한다. 자신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할아버지 통해 거창사건 알게 된 지윤, 관객 대변하는 인물"

 "거창사건에 대해 전혀 몰랐던 지윤은 할아버지의 과거를 통해 이를 서서히 알아간다. 관객의 시선을 대변하는 입장이다. 감독님과 명계남 선생님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 부분이 '굳이 네가 느껴지지 않으면 슬퍼하지 마라'였다. 제 호흡도 있고 영화의 호흡도 있지만 '관객이 이 장면을 볼 때 어떤 기분에 다다를까' 하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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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리오를 맨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시나리오를 맨 처음 접하고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영화가 지윤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머리를 스쳤다.

이 영화를 계기로 거창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영화의 리얼리티를 위해 실제로 거창사건에 관련된 후손들을 뵐 수 있었다.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도 그랬지만, 후손들을 뵙고 나서 영화에 임하는 자세가 한층 더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 영화 촬영을 위해 거창 사건을 검색해 보니 어땠나?
"약간 겁이 났다. 제작발표회를 했을 때 유족 분들로부터 '<청야>가 화해를 다룬다고 했는데 누구 마음대로 화해를 하느냐' 또는 '우리는 이 사건을 제대로 짚어주길 바란다'는 질문을 받았다. 제 세대가 학살을 겪은 적이 없지만 거창사건은 몇 백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충격적인 사건이다. 알면 알수록 부담이 커져서 이 영화를 제가 찍어도 될까 생각될 정도로 거창사건은 충격적이었다."

- 안미나씨가 연기하는 지윤을 어떻게 소화하려고 노력했나?
"거창사건에 대해 전혀 몰랐던 지윤은 할아버지의 과거를 통해 이를 서서히 알아간다. 관객의 시선을 대변하는 입장이다. 감독님과 명계남 선생님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 부분이 '굳이 네가 느껴지지 않으면 슬퍼하지 마라'였다. 제 호흡도 있고 영화의 호흡도 있지만 '관객이 이 장면을 볼 때 어떤 기분에 다다를까' 하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다."

 "희생자의 후손에게 '고맙습니다' 하고 손을 꼭 잡는 장면이 있다. '미안합니다' 라고 답하는 건 쉽게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왜 고맙다고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육체적으로 촬영하면서 힘들었다기보다는 정신적으로 이해를 해야 했기에 이런 장면에서 약간 힘들었다."
ⓒ 마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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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장면이 애착이 가며 어떤 장면을 찍을 때 가장 어려웠는가?
"지윤이 아파서 누워있을 때 마을 주민들이 거창사건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다. 연기하며 가슴 아픈 장면이었는데 제가 울 때 명계남 선생님이 손을 꼭 잡아주셨다. 정신적으로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영화 속에 거창사건의 다큐멘터리와 양민을 학살하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정서적으로 크게 와닿는 장면이다. 희생자의 후손에게 '고맙습니다' 하고 손을 꼭 잡는 장면이 있다. '미안합니다' 라고 답하는 건 쉽게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왜 고맙다고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육체적으로 촬영하면서 힘들었다기보다는 정신적으로 이해를 해야 했기에 이런 장면에서 약간 힘들었다."

- 우는 장면에 대한 언급이 나와서 질문한다. 우는 장면을 찍을 당시 단지 슬픈 감정 때문은 아닌 만감이 교차했을 법한데.
"우는 장면을 촬영할 때 상대 배우의 눈을 보고 우는 연기를 하는 편이다. 명계남 선생님과 찍을 때 명 선생님은 분명 웃고 있는데도 마음이 짠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명 선생님의 눈에 있는 것 같다."

- 명계남 선생님과 함께 작업하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명계남 선생님과 저, 이대연 선배님이 같은 학교, 같은 동이리 출신이다. 동문 합동 영화라는 우스개 이야기를 셋이서 했을 정도다. 명계남 선생님이 많은 작품에 출연하지 않았나. 명계남 선배님은 장면에 몰입할 때 이렇게 연기하면 관객도 감정이입할 수 있다는 연기적인 부분에 대해 귀띔을 해주실 때가 있었다. 그런 조언들이 제게는 큰 힘이 되었다."

- 대학교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전공했다.
"처음에는 인문학부로 입학했다. 철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이유는 연극 동아리에서 연기를 하면서 철학과 심리학의 필요성을 느껴서다. 철학과 심리학은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학문이다. 거창사건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 중요한 게 있다. 사람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일어난 사건이나 (희생자)숫자만 보고 판단하는 때가 많다.

6.25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거창사건으로 죽은 양민은 몇백 명에 불과하다고 숫자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거창 사건은 몇백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은 충격적인 사건이다. 사건과 플롯에만 연연하기보다 사람에 초점을 맞춰야 했던 영화가 <청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