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사람

: 남이랑북이랑 Sun, 07, Apr 2013 23:26:53 +0900

 

어제 4월 7일 일요일 오후 1시 반쯤 서울의 한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가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 홍보 사이트 <우리민족끼리 (우민끼)> 회원이라고 <일간베스트 (일베)>에서 폭로했다면서 곧 경찰로부터 소환조사를 받게 될텐데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고 묻더군요.

어느 정도 예상했던 터라 ‘올 것이 왔다’는 생각으로 <일베 (www.ilbe.com)>에 접속했습니다. 검색창에 ‘이재봉’을 치니 맨 위에 “우민끼 저장소 2차 명단 중 순수 한국인 20명 리스트”라는 제목의 글이 나오더군요.

“죄수번호 977, 이름 이재봉, 직업 원광대 교수” 등 제 신상 기록이 자세히 그리고 정확하게 공개되어 있었습니다. 반갑기도 하고 은근히 쫄기도 했습니다. 반갑다는 것은 지금까지 약 20년 가까이 ‘친북주의자’로 자처하며 국내외에서 수백 편의 글과 수백 회의 외부 특강을 해왔지만 제 책이 ‘불온도서’나 ‘금서’ 목록에 오른 적이 없고 제 이름이 ‘종북 백과사전’이나 ‘종북주의자’ 명단에 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바닥에서는 제 이름이 꽤 알려진 편인데 영광스러운 명단에 오르지 못해 제가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가 싶어 좀 섭섭한 면도 있었거든요. 쫄기도 했다는 것은 검찰이나 경찰에서 저에 대한 조사를 이미 시작했을테니, 앞으로 언행에 조금 더 신경써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고요.

검찰이나 경찰에겐 수사에 도움을 주고, 머지않아 언론에 간첩이나 종북주의자로 오르내릴 제 이름을 보고 놀라거나 실망할 국내외의 많은 지인들에겐 미리 귀띔을 건네기 위해 아래와 같이 제 ‘간첩행위’를 자수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990년대 말쯤 한 주간지에서 김일성에 대한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1994년 6월 미국이 북한을 폭격할 것이라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아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담판을 지을 때의 일화 두 가지였지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김일성이 집무실에서 카터와 마주앉아 얘기하다 갑자기 일어서더니 카터 옆으로 가서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당황하며 얼굴빛이 굳어지는 카터에게 김일성이 기분 나쁘냐고 짓궂게 묻고, 카터가 그렇다고 대꾸하자, 김일성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각하께서 가만 앉아 계시는데 제가 건드리니 불쾌하시죠? 우리 조선이 가만있는데 미국이 자꾸 건드리니 우리가 짜증나고 불안합니다. 우리 조선을 자꾸 건드리지 말라고 전해주십시오.”
다음날 둘이 대동강에서 배를 타고 평양에서 남포까지 가는데 강 가운데서 김일성이 갑자기 엔진을 끄라고 했다. 의아해하는 카터에게 김일성이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각하, 저기를 보십시오. 우리 인민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습니다. 낚시에 방해되지 않도록 저만큼 지나서 시동을 다시 걸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카터가 김일성에게 인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지도자라며 감탄했다.

2005년부터 북한에 관한 교양서적 한 권 펴낼 것을 구상하면서 김일성에 관한 글에 앞의 일화 두 가지를 곁들이고 싶었습니다. 노회한 정치인의 배짱과 쇼맨쉽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니까요. 그런데 이 일화를 소개하려면 출처를 정확히 밝혀야겠는데 그 기사가 실린 주간지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정확한 시기도 알기 어려웠습니다. 마침 그 무렵 중국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북녘 학자들을 만나 위 일화를 들어봤느냐고 물었더니 한 학자가 다음과 같이 자랑하더군요. “그 때 카터가 우리 수령님한테 뭐라고 한지 아십니까? 미국에 훌륭한 대통령이 셋인가 넷이 있는데, 우리 수령님이 그 서넛을 합친 것보다 더 훌륭하다고 말했더랬습니다.” 그의 과장에 제가 장단을 맞추었지요. “내가 수령님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수령님을 널리 자랑할 겸 그 일화를 소개하고 싶으니 그게 실린 신문이나 잡지를 구해줄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인쇄된 자료가 아니면 그걸 인용해 글을 쓸 수 없습니다.”

다음 세미나 때 만나 그 자료를 건네받기로 했는데 불행하게 그를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2007년 겨울방학 때 미국에 두 달 간 머무르며 <조선중앙통신>, <우리민족끼리> 등에 접속하여 <로동신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조선로동당 규약>, <김일성 회고록>, <김정일 총비서 로작> 등을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그 일화는 찾지 못했습니다. 회원으로 등록해 관리자에게 그 자료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두어 번 보냈지만 책 원고를 마무리할 때까지 아예 답장조차 받지 못했고요. ‘죄수번호 977 간첩’ 또는 ‘우민끼 회원’이 된 과정과 2008년 6월 출판된 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