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8.13 21:01수정 : 2014.08.13 22:58

[잊지 않겠습니다]

‘분위기 메이커’ 수경이에게 언니가

세상에 하나뿐인 사랑하는 내 동생 수경이에게.

수경이가 수학여행 떠난 지 어느덧 넉 달이 거의 다 됐어. 우리 수경이, 친구들이랑 사진 많이 찍고 잘 지내고 있어? 수경이가 제일 싫어하던 여름이 벌써 왔어. 지금쯤이면 덥다고 짜증냈을 텐데…. 아직도 집에는 수경이 흔적들이 가득해서 내일이라도 수경이가 “수학여행 잘 다녀왔다”며 선물 사들고 집에 올 것만 같아. 언니는 방에 혼자 있으면 옆 침대에 누워서 이어폰을 끼고 동영상 보면서 큭큭대던 수경이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나. 그런데 이젠 그런 수경이가 옆에 없다. 언니는 어릴 때부터 항상 맛있는 거 먹거나 좋은 곳 있으면 여기 꼭 수경이 데려가야겠다 하고 수경이 데려가곤 했는데, 물론 수경이는 귀찮아 했었지만 그래도 좋았지?

우리 막둥이 수경아. 수경이가 언니 생일 때마다 예쁜 그림 그려서 편지 써주는 거 받아만 봤지, 언니는 써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치? 이제 언니는 누구랑 맛집을 가고 누구랑 엽기사진은 찍지? 우리 이쁜이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언니가 생각하는 행복한 미래에 수경이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가슴 먹먹하고 답답해. 언니가 할 수 있는 게 우는 거밖에 없어서 더 가슴이 아파. 언니가 수경이 있을 때 더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수학여행 간다고 신나서 옷 사러 가자고 했던 게 마지막일 줄 알았으면 더 예쁜 옷 사줄걸. 놀러가서 맛있는 거 많이 사먹으라고 용돈이라도 줄걸. 후회뿐이야. 사랑하는 수경아. 거긴 어때? 수경이가 좋아하는 선선하고 시원한 날씨였으면 좋겠다. 그래도 그곳에 수경이 친구 해인이도 있고, 다른 친구들이 함께 있으니까 걱정 안 할게. 밉지만 이 못난 언니 생각도 가끔 해줘. 저번에 언니가 수경이 보러 갔다 온 날 사고 날 뻔했을 때도 수경이가 언니 지켜줬잖아. 앞으로도 아빠, 엄마, 오빠, 언니 하늘에서 지켜봐 줘. 우리도 여기서 수경이 걱정되지 않게 때로는 웃으면서 잘 지내고 있을게. 아직 구조되지 못한 친구들도 빨리 사랑하는 부모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수경이가 도와줘.

예쁜 수경아. 언니가 표현은 못했어도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이기적이었고 못났던 언니 미워하지 마. 언니가 먼저 보내서 미안해. 정말 사랑해. 수경이 따뜻한 손 잡고 싶어. 이제 겨울에 손, 발 차가운 언니 손 누가 잡아주니? 언니가 돈 많이 모아서 맛있는 거랑 갖고 싶은 거 다 사줄게. 다시 꼭 만나자. 그날을 위해서 언니 힘낼게.

못난 언니의 동생으로 태어나줘서 너무 고맙고 사랑해. 언니가 먼저 보내서 미안해. 언니가 표현에 익숙지 못해서 많이 안아주지도, 손을 잡아주지도, 사랑한다고도 말 못했던 게 너무 후회된다. 많이 보고 싶으니까 꿈에 자주 놀러 와줘. 사랑해 김수경. 엄마, 아빠, 오빠가 많이 보고 싶어해.

수경이가 너무 보고 싶은 하나뿐인 언니 소라가.


•김수경양은

단원고 2학년 1반 김수경(17)양은 친구들 사이에서 ‘오케이 걸’로 통했다. 누군가 부탁을 하면 거절을 하지 않고 모두 들어주는 착한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수경이는 친구들이 다투면 앞장서서 화해를 주선했다. 배우나 탤런트 흉내도 그렇게 잘 냈다고 한다. 모두가 찾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8살 많은 오빠와 6살 많은 언니를 둔 귀여운 막둥이였다. 한방을 쓰는 언니를 데리고 근처의 맛집이라는 맛집은 다 찾아서 돌아다녔다. 엽기적인 사진도 재치있게 잘 찍어줬다. 가족의 생일이면 편지지에 예쁜 그림을 그려 축하 편지를 꼭 써줬다.

수경이는 세월호 침몰사고가 난 지 8일째인 4월23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친구들과 함께 경기도 화성 효원납골공원에 잠들어 있다. 최근 수경이 언니가 남자친구와 납골공원에 갈 때, 졸음 운전하던 남자친구의 눈앞에 수경이가 나타나 화들짝 놀라 깼다고 한다. 수경이 언니는 “수경이가 나를 지켜줬다”고 말했다.

안산/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