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0.02 20:45수정 : 2014.10.02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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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겠습니다]

환경조경사 꿈꿨던 재욱에게 엄마가

하늘과 땅의 축복으로 우리에게 온 사랑하는 엄마 아들 재욱이 보렴. 

재욱이 잘 잤어?

응~.

그만 자고 일어나야지?

응~.

아웅~. 잘생긴 우리 아들, 사랑해~.

나두~.

여전히 엄마의 부비부비에 쑥스럽게 대답하는 아들. 오늘도 엄마는 너와의 대화로 하루를 시작한다.

포근하고 따뜻한 어느 봄 날, 너는 세상 가장 친한 친구들과 신나는 하늘 여행을 떠났지.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 너무나 눈부신 밝은 빛으로 돌아왔어. 그 빛은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양심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의로운 희생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해 주었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너희의 여행에 함께했었지.

엄마는 아직 그날, 멈추어진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어떠한 것으로도 너와 친구들의 존재를 대신할 수 없기에 너무도 가혹한 긴 터널을 지나오고 있다. 하지만 슬퍼만 하고 있어선 아픔을 해결할 수 없기에 엄마는 거룩한 분노로 맞서고, 너희의 여행이 슬픈 여행이 아니라 세상을 밝히는 희망의 여행이 되게 하고자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고, 무엇을 영원히 기억해야 하며, 무엇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지를 알기 위해.

그래도 아직 엄마는 참 아프고 너무 미안하다. 왜 진작 좀 더 신경 쓰지 못하고 네가 없는 빈자리 속에서 네가 어떤 아이였는지, 어떤 친구들과 친했는지, 무엇을 더 좋아했는지 알게 되다니. 천진난만한 웃음 속에 드러나는 보조개, 간드러진 웃음소리, 튼실한 꿀벅지, 어설픈 기타리스트, 우리 집 에너자이저 재욱이.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느끼고 싶고…. 네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온몸으로 반응하는 엄마의 세포들.

심장이 찢어지는 그리움. 엄마의 분신, 엄마 껌 딱지 우리 재욱이. 이제는 살랑살랑 뺨에 스치는 바람으로, 둥실 웃는 뭉게구름으로, 따스한 햇볕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로, 사람들의 웃음 속에, 세상의 모든 것들로 돌아와 엄마와 하나 된 우리 재욱이.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이고, 사랑이고, 에너지인 우리 재욱이. 너는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하늘의 가장 큰 선물이다. 여전히 엄마와 아빠는 “우리가 가족이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했던 너와 함께 우리가 꿈꾸던 세상을 함께 그려갈 것이다. 재욱이의 꿈을 이루려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누나는 더 큰 미래를 꿈꾸고 있다. 가장 큰 힘이 되는 네가 힘과 용기를 좀 주렴. 세상이 너희를 기억할 것이고 남아있는 친구들이 너의 꿈을 함께 이루어 갈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5인방 절친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많이 많이 재미있어 귀뚜라미 우는 이 가을에도,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에도, 그 여행은 끝나지 않겠지만 가끔은 시간 내서 꿈에 라도 소식 전해주면 고맙겠다. 부모님들이 소식 많이 궁금해 하신다. 그리고 이왕이면 세상 구석구석 빼먹지 말고 가고 싶었던 곳 자유롭게 여행하고, 언제일지 몰라도 네가 그 하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이 엄마는 얼마든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마. 엄마 아들로 태어나 줘서 고맙고, 우리 가족으로 함께 행복하게 살아줘서 참으로 고맙구나. 사랑한다. 재욱이, 영원히. 

꿈만큼이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재욱이에게.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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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욱군은


단원고 2학년 8반 이재욱(17)군은 해보고 싶은 것도, 꿈도 많았다. 동물과 자연을 좋아해 동물사육사를 꿈꾸는가 하면, 용감한 소방관이 되고 싶어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환경을 아름답게 꾸미는 환경조경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재욱이는 머리가 좋고 재능도 많았다. 학원에 한 번도 가지 않았지만 시험 때마다 반 1~2등의 성적을 유지했다.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5인방’ 친구들과는 학교폭력과 청소년 자살을 주제로 한 사용자제작콘텐츠(UCC)를 만들어 유튜브 등에 올리기도 했다.


성격도 순하고 착했다. 집에서는 가족과 말다툼을 하거나 싸운 적이 없을 정도였다. 한 살 많은 누나도 잘 따랐다. 수염이 나기 시작하자 면도를 할까 말까 고민하던 고등학생이었다. 엄마와 아빠의 기대와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재욱이는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난 지 8일 만인 4월23일 가족들의 품에 돌아왔다. 지금은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