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30 20:09수정 : 2014.07.31 00:42

[잊지 않겠습니다 31]

아이 돌보기 좋아했던 영란에게

제주도 수학여행을 가기 전에 “엄마 아빠, 나 같은 딸이 있어서 좋아. 행복하지?” 하고 묻던 말이 지금도 귓가에 메아리치고 있어. 그때 큰 소리로 “우리 딸이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너무 좋다”고 소리쳐서 말해 줄걸…. 100일이 넘도록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않는 큰딸이 미치도록 보고 싶어.

우리 큰딸이 엄마, 아빠 품으로 온 18년 동안 너무도 행복했어. 심성이 여리고 착한 우리 큰딸은 항상 동생들을 생각했지. 엄마, 아빠도 늘 생각했지. 엄마, 아빠는 그런 영란이가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웠어.

엄마, 아빠는 항상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정말 미안해. 영란아, 다음 생에는 엄마, 아빠보다 너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더 힘있는 엄마, 아빠를 만나렴. 엄마, 아빠는 사랑밖에 줄 게 없던 못난 부모여서 미안해. 평소 큰딸에게 자주 편지도 쓰지 못하고 뒤늦게 편지를 쓰는 지금 모습이 왜 이리도 왜소하고 못나 보이는지 모르겠다.

사랑한다는 말을 몇 번 더 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영란아 사랑해. 엄마, 아빠의 영원한 큰딸, 영란아. 너무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 하늘나라에서 친구, 선생님하고 잘 지내.

영원히 우리 가족 가슴속에 같이 살아갈 소중한 딸에게, 엄마와 아빠가.

•박영란양은

단원고 2학년 3반 박영란(17)양은 아이들을 좋아했다. 집에서는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3학년인 두 여동생도 잘 돌봤다. 먹을 것이 생기면 동생들에게 꼭 가져다주고, 짬이 나면 스파게티 등 동생들의 간식을 직접 만들어줬다. 엄마가 아플 때는 동생들의 밥도 챙겼다. 아이들 돌보기를 좋아한 영란이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어했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났던 4월16일 아침 9시47분 영란이는 엄마에게 ‘배가 기울어졌다’고 휴대전화 문자를 보냈다. 엄마와의 전화 통화에서는 “무섭다”며 울었다. 아침 9시53분에는 엄마와 아빠에게 카카오톡으로 ‘보고 싶다’는 마지막 글을 남겼다.

영란이는 사고 6일째인 4월21일 물 밖으로 나왔다. 전날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딸을 기다리던 엄마의 꿈에 영란이가 나와 “곧 돌아갈 테니까 집에 가 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란이의 장례식은 4월23일 치러졌고 지금은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다.

엄마는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도보 행진에 참여하고 서명도 받고 있다. 갑자기 곁을 떠난 영란이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이다.

안산/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