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16 20:29수정 : 2014.07.16 22:24

지난달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40여일 동안 경기도 안산시에서 단원고와 가족 등을 취재해온 김기성 기자(왼쪽)와 김일우 기자.

‘잊지 않겠습니다’ 게재 한달
김기성·김일우 기자 취재기

가슴에 자식을 묻은 엄마는 전화기를 붙들고 흐느끼다 결국 엉엉 울어 버립니다. 듬직하기만 했던 아빠 역시 가슴을 치며 말을 잇지 못합니다. 예쁜 동생을 잃은 언니도, 친구 같은 형을 떠나보낸 동생도 사랑하는 이를 추억하려다 비탄에 빠지고 맙니다.

억울하고 답답하기만 한 숱한 죽음을 단순히 숫자로만 기록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지난 한 달 내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만나고 통화했습니다.

하루 3~5명의 유가족을 접촉할 때마다 ‘사랑하는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한결같이 울먹이며 말합니다. “우리 아이 꿈에라도 한 번만 나타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이라고. 때문에 유족에게 가장 많이 건넨 말은 “어머니, 맘껏 우세요.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힘내세요”였습니다. 엄마가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저희들도 숨죽여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마지막 모습 떠올려달란 부탁에
아이들 엄마가 아빠가 흐느낄때
저희도 숨죽여 울었습니다
“맘껏 우세요…하지만 힘내세요”

한겨레에 아이들을 보내주신
유가족들께 감사드립니다
‘어린 삶’ 기록 계속하겠습니다


아이의 짧은 생을 소개하기 위해 “우리 ○○이는 언제 발견됐나요”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엄마와 아빠는 “기자님, 우리 아이는 발견된 게 아니라 나온 거예요”라고 답합니다. 아직 아이들의 죽음을 믿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담긴 대답입니다.

한 엄마는 “아이를 먼저 떠나보냈는데, 그래도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어떻게든 살아가는 내 모습이 가장 슬프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엄마는 “내 아이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는 말만 한 채 인터뷰 내내 울음을 그치지 못합니다. 취재하던 저희들도 먹먹한 가슴을 짓누르며 차분히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200자 원고지 3장에 예쁘고 꿈 많았던 삶을 어찌 다 표현하겠습니까마는 ‘슬픈 만인보’는 매일 그렇게 쓰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제목을 달아 기사를 전송하고 나면, 날마다 아이들을 위한 ‘씻김굿’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지난 1일 박재동 화백이 그려준 아이들의 얼굴 그림 75점을 들고 경기도 안산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부모들은 “우리 아이 왔어요? 아이고 이 녀석 또 이렇게 살아왔구나…”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그림 한 점 한 점을 부모의 품에 안겨드렸습니다. 어떤 엄마들은 “고맙습니다. 잊지 않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두 손으로 아이를 받아 안고 연신 고개를 숙였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슬픈 산타클로스’가 된 듯했습니다.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292명 사망.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502명 사망.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192명 사망….

대형 참사로 희생된 수많은 죽음은 늘 숫자로 간단히 표현됩니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의 기억에는 죽음의 숫자만 어렴풋이 남습니다. 분노와 슬픔,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식도 점차 흐릿해집니다. 그리고 사고는 다시 일어납니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아이의 죽음을 잊지 말아달라”고 눈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나중에 아이들을 하늘나라에서 만나면 부끄럽지 않도록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해달라고 국가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은 듯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아닌, 우리의 아이들’이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며 유가족이 허락하는 한 어린 생명의 삶을 기록하는 일을 계속합니다. 아이들을 ‘망각의 강’에서 하나씩 건져 올려 국민의 가슴으로 안겨드리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찢어지는 아픔을 억누르며 편지를 써주시고, <한겨레>에 아이들을 보내주신 유가족들께 감사드립니다. 힘드시겠지만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슬픔 이겨내시고 힘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국가가 이 땅에 존재한다면 이젠 이들의 외침에 답을 주시길 간곡히 요청합니다.

안산/김기성 김일우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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