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07 20:22수정 : 2014.07.07 20:59

[잊지 않겠습니다 16]

‘애교쟁이 막내딸’ 박혜선에게 엄마가

태어날 때부터 눈이 나빠 라식도 라섹도 할 수 없는 우리 아기에게 나는 아무것도 해줄 게 없었다. 그저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하는 거 외에는. 눈에 좋은 식품도 사줬지만 잘 먹지 않아서 꾸준히 해주지 못했다. 너무 미안하다.

18살이 되도록 가스불도 잘 켜지 못하고 언니나 엄마를 무수리처럼 부려먹었다. 걱정이다. 하늘나라에서 구박받을까 봐. 그래서 같이 하늘나라로 간 단원고 학생 가운데 요리 잘하는 친구에게 기도했다. 혜선이 밥 부탁한다고. 엄마가 해준 밥이 가장 맛있다고 해주던 내 예쁜 딸. 아이들 보느라 힘든 엄마를 위로한다며 내가 좋아하는 음료수를 사다 안기던 착한 내 딸. 아빠 머리에 원형 탈모가 생겼다며 속상하다고 눈물짓던 마음이 예쁜 내 딸. 사춘기 때 나랑 엄청 싸우며 ‘엄마 목소리도 듣기 싫다’고 말하던 얄미운 내 새끼.

고2가 되면서 꿈을 정했다며 기뻐하던 우리 혜선이. 동국대 국문학과 가서 방송작가나 담임샘처럼 국어선생님이 되고 싶다던 우리 딸. 그 꿈을 그려보지도 못한 채 너무 먼 나라로 가버렸다.

박혜선, 하늘나라에서라도 너의 꿈을 꼭 이루렴. 엄마, 아빠, 언니가 이곳에서 응원할게. 엄마는 하늘만 보면 네가 나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해. 좋겠다, 너는 엄마를 볼 수 있어서. 착하고 예쁜 내 딸 하늘에선 성모님이 엄마야. 자애로우신 분이야. 엄마처럼 성질 더럽지 않으시니까 존경하고 잘 따르도록 해라.

하늘의 별이 된 우리 아기에게. 지켜주지 못해 너무도 미안한 엄마가.


박혜선양은

“엄마, 배가 흔들려. 구명조끼 입고 대기하래….”

세월호가 기울고 있던 4월16일 오전 9시3분, 단원고 2학년 2반 박혜선(17)양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친구 손 잡고 선생님 곁에 있어”라고 말했다. 시력이 좋지 않은 딸이 행여나 안경을 잃어버릴까 봐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 통화였다. 혜선이는 세월호가 침몰한 지 19일 만에 숨진 채로 엄마에게 돌아왔다.

하지만 엄마는 숨진 딸의 얼굴을 끝내 보지 못했다. 엄마가 충격을 받을까 봐 주변 사람들이 만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의 기억 속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4월15일 아침 낑낑대며 여행 가방을 끌고 집을 나서던 혜선이가 마지막 모습으로 남아 있다.

혜선이는 세월호에 타고 있던 4월15일 밤 9시 엄마에게 ‘사랑해, 벌써 보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다. 안산/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