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08 20:32수정 : 2014.07.08 23:12

[잊지 않겠습니다 17]

‘메이크업 아티스트’ 꿈꾼 혜경에게 엄마가

세상이란 문을 노크하며 ‘부모’라는 좋은 이름을 지어준 아빠, 엄마의 두 번째 보물 긍아!

그리고 엄마의 바다를 건강하게 40주란 횡단의 경험을 똑같이 겪어본 언니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 긍아.

애칭으로 불리던 이름을 마지막으로 불러 볼게. 긍아 네가 머문 그곳에서 아주 잘 있지 오늘은 무얼 했을까?

곰곰이 지난 발자취를 떠올려 보면 아마도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즐겨 다니던 음식점, 노래방, 영화보기, 수업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뷰티학원으로 뛰거나, 교정의 벗 꽃 아래에서 예쁘게들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듯 그곳에서도 진행형으로 다들 함께 지내고 있지?

시간은 참 잘도 흘러 한 달, 두 달, 세 달, 우리 주위를 맴도는데 함께 웃고 여행도 가고 티격태격도 해보고 영화도 보고 외식도 하고 언니와 긍이 방에서 음악도 듣고 하던 추억은 더 이상 만들 수가 없이 꼭꼭 숨어 버렸네.

그 숨어버린 또 하나의 아름다운 140여 일간의 오빠와의 만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웠어도 늘 같은 시간에 오빠가 집 앞까지 와서 함께 걸으며 등교해주고 하교도 해주었던 추억. 주말에 공원에서 자전거를 가르쳐 주었던 시간, 그리 넉넉하지 않은 학생의 신분이기에 저렴한 곳에서 만나고. 오빠만 만나니까 친구들이 왕따 시키면 어쩌지 하니 오빠보다 친구가 우선이니까 친구들과

놀아 하던 예쁜 추억도 이제는 함께 갖고 갔겠지 긍아.

긍이가 태어나서 지금껏 살아온 동안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늘 고마웠는데, 이제는 찾을 수 없는 아주 먼 곳에 가버린 멋스러운 작은 소녀.

긍이의 마지막 이력을 엄마가 써보았단다

단원고등학교 2-2반 27번 이혜경

희망대학교 :1. 명지 전문대학교 2. 성신여자대학교

장래희망: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제 막 꿈의 계획을 맘껏 풀어보고자 했던 2014년이었는데….

그래서 고1 겨울방학을 부모님과 의논도 않고 스스로 뷰티학원을 여러 곳 동분서주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직접 알아보고 혹은 인터넷으로 메이크업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 등을 찾아보며 시간을 보낸 후 최종적으로 결정한 뷰티학원을 어느 날

“엄마, 나 중앙동에 학원 면담하고 왔으니 한번 가보시고 등록을 해달라”고 하던 긍이. 당차고 자신의 진로에 열의가 찼던 딸 긍이였지. 엄마가 구시렁대며 “뷰티학원은 학원비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들고 무엇보다도 엄마는 전문적인 분야는 싫다”고 했지. 그러자 “한 번만 원장님 찾아뵙고 결정해 달라”고 해 마지못해 학원을 내원했지.

네가 그토록 원하는 분야인 만큼 쉽지 않은 결정을 하며 등록하던 날 좋아서 “엄마, 걱정하지 마 이다음에 내가 학원비 벌어서 줄게. 그리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니까 월급 많이 받으면 다 줄 거야 히히” 하였던 밝고 환하게 엄마를 보던 우리 보물 긍이.

수학여행 가기 며칠 전 저녁밥을 먹을 때 내 옆에서 긍이가 말했지. “엄마. 조금만 고생해, 내가 아빠, 엄마 여행가이드 붙여서 해외여행 시켜줄 테니까 정말이야 알았지?”라고.

엄마는 “우리 네 식구가 다 함께 가는 게 좋은데”라고 하니 “아유 두 분이 재미있게 다녀오세요”라고.

그리고 “내가 엄마 얼굴 주름도 다 펴줄 거야. 엄마는 보톡스 싫은데 하니까 내가 마사지로도 주름 펼 수 있어”라고. 그런 말이 지금도 엄마의 귓가에 생생하구나 긍아.

그리도 좋아하던 메이크업 아티스트에 대한 부푼 꿈은 착착 진행되었던 수학여행 후의 계획은 정말이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구나. 그렇게 너를 차디찬 바다가 삼켜버리고 6월의 아빠 생신이 있었던 거 알고 있었지? 알고 있었을 거라 믿는단다.

하지만, 아빠의 일생 중 가장 슬픈 생신을 맞이하게 되었지. 긍이가 없는 그날의 시간을 세 식구는 분향소에서 눈물을 흘리며, 함께 있었으면 케이크 사서 축가 부르고, 서로 선물을 드렸으며, 그리고 우리 가족이 남다르게 하던 회비에서 별도로 현금을 주고 오붓하게 외식을 했을 터인데….

지난 시간들의 영상을 떠올리며 영정 속 너를 뒤로 한 채 나올 때는 늘 똑같은 마음을 엄마 스스로 읽는구나. 영정 속 네가 가지 말라고 하는 애원의 눈길을 보내는 것 같은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고 미어졌지. 그런 미어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너의 영정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엄마도 뒷모습을 결코 네게 보여 주지 않았지.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언니가 말이다 아빠 생신 선물을 너와 함께 마련한 거라고 드렸단다. 아빠가 현관에 들어서며 너의 방으로가 “혜경아 고맙다” 한 말 잘 들었지?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니까 네가 보이지 않아도 늘 함께 있다고 믿고 지내니까.

자연스럽게 평소대로의 일상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야. 괜찮겠지 긍아?

오늘도 엄마는 시야에 닿는 모든 것을 세상에 없는 예쁘고 사랑하는 나의 딸에게 보여 주었지. 넓은 하늘을 보면 뭉게구름도 있고 비가 올까 염려스러운 짙은 회색빛을 보일 때도 있고. 정말이지 아주 맑은 날은 푸른 바다를 연상했지만 이제는 하늘을 보기가 무섭구나. 하얗고 빨갛고 노랗고 형형색색의 꽃을 보면 긍이의 서랍에 아직도 나란히 줄지어 놓여 있는 매니큐어가 연상되고, 책상 위에 스케치 색연필은 마냥 주인을 기다리듯 놓여 있는 것도 떠오르고. 또, 괜히 치웠나 하는 많은 색조 화장품이 아련하고.

바람이 콧등에 실어다 주는 아카시아 꽃향기도 그랬고 살갗에 닿는 시원함도 그리고, 나뭇잎이 연하게 이제 막 새순을 내밀며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마음껏 기지개를 켜듯 쭉쭉 뻗는 가지를 볼 땐 긍이도 큰 꿈을 향해 날갯짓을 힘차게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을 출발선인데.

그 아름다운 꿈을 잃어버린 천사가 되어서 사랑하는 가족에게로 온 예쁜 딸 긍아.

마지막으로 아빠가 너에게 참으로 미안하고 가슴에 한이 맺힌다고. 그래서 이 글을 긍이에게 띄우지 않으면 평생을 더 가슴 아프게 살아갈 것 같다며 보낸다. 아빠가 2013년 12월에 핸드폰을 밤늦도록 한다고 일주일간 정지시킨 적 있었지. 그래 그때 항상 눈높이를 맞추며 대해 주었지만 그때는 긍이가 너무 피곤해 하는 아침의 모습을 보시곤 단호하게 정지를 시켰지. 아빠가 그게 너무 미안하시다고 긍이가 없는데 이런 용서의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이런 지면으로나마 표현을 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으니 이글을 빌려 사랑하고 예뻐했던 딸에게 마지막 아빠의 심정을 보여 준다 미안하다 미안해.

하지만, 우리 착한 긍이는 아빠 마음 그때 다 이해해주었지. 고맙다. 이제는 너와의 지면으로서의 회포도 끝맺음을 해야겠구나.

사랑한다. 사랑해. 딸아, 정말이지 너무 보고프다.

보고픈 아빠와 엄마의 분신,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너를 너무나 너무나 잊지 못하는 아빠, 엄마, 그리고 언니가 있단다.

P.S. 언니 꿈에 네가 말하길 “위에서 지켜보고 있다”했다며. 그래 어른들이 너희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할 거야. 그러니 끝까지 잘 지켜보아다오. 천사들아….

 


이혜경양은

혜경이의 책상에는 아직도 2만원이 남아 있다. 엄마는 “수학여행 가서 맛있는 것 사 먹어”라며 5만원을 꼭 쥐여줬지만, 혜경이는 3만원만 가져갔다. 나머지 돈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출전할 미용대회 재료비로 쓸 모양이었다. 혜경이는 맞벌이를 하는 엄마와 아빠의 부담을 덜어드리겠다며 30분이 넘게 걸리는 학교까지 매일 걸어다니며 버스비를 아꼈다고 한다.

4월17일 초저녁까지만 해도 단원고 2학년 2반 이혜경(16)양은 생존자 명단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18일 새벽 ‘빨간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아이의 얼굴을 확인해 달라’는 당국의 요청에 엄마는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꿈꾸던 혜경이는 대학생인 언니와 친구처럼 지냈다. 엄마는 물론 언니의 화장품을 직접 골라 발라주고 코치까지 해주던 혜경이. 이제 예쁜 꿈을 접고 평택 서호공원에 잠들어 있다.

혜경이 이모는 엄마에게 말했다. “언니, 혜경이가 그래도 엄마 아빠에게 예쁜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가서 그나마 다행이야. 예쁜 아이 이제 곱게 보내주자”라고.

안산/김기성 김일우 기자 player009@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