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 입력 2014.07.16 14:16 | 수정 2014.07.16 15:36

3개월째 차가운 냉동고서 가족 기다리다 '한 줌 재'로

(목포=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이제 편안히 쉴 수 있게 됐으니 다행이에요.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게 갔으면 좋겠네요."

세월호 참사로 동생과 조카, 제수씨를 잃은 권오복(60) 씨는 16일 오전 목포 화장장에서 제수씨의 시신을 화장하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권 씨의 제수씨인 한윤지(29) 씨는 베트남에서 귀화해 지난 4월 16일 제주도에서 새 삶을 꿈꾸며 가족과 함께 세월호에 몸을 실었다.

↑ 별이 된 사연 (진도=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세월호가 침몰한지 석달이 지난 16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 희생자와 실종자들을 기억하는 다양한 사연을 적은 별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배가 침몰하면서 남편 권재근(51) 씨와 아들 혁규(6) 군은 실종됐고 딸 지연(5) 양만 가까스로 구조됐다.

한씨는 4월 23일 새벽 사고 해역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돼 진도 팽목항의 시신안치소에 눕혀졌다.

'저승으로 가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남은 가족을 찾고 나서 함께 장례를 지내려던 권씨 가족은 최근 한씨의 베트남 가족으로부터 "베트남에서는 죽은 지 90일이 넘으면 영혼이 구천을 헤매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권 씨 가족은 결국 한 씨 친정의 뜻에 따라 83일 만인 이날 한 씨의 시신을 화장하게 됐다.

화장장에는 권오복 씨와 한 씨의 아버지 판반차이(62)씨, 여동생 판녹한(26)씨 등 10여명이 참석했다.

정식으로 치르는 장례식이 아니어서 영정 사진 없이 단출하게 진행됐다.

낯선 이국땅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억울한 죽음으로 헤어져야 했던 여인은 한 줌의 재로 가족과 재회했다.

한 씨의 여동생 판녹한씨는 "제주에 정착한 뒤 베트남에 온다며 옷이랑 신발을 사서 보여줬다. 16일 제주에 간다며 통화한 것이 마지막이었다"며 울먹였다.

아버지 판반차이 씨는 "베트남 집을 다 지으면 놀러 온다고 했는데,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며 "뭐든지 해달라고 하면 다 해주는 착한 딸이었다"고 말했다.

권오봉 씨는 "연속극을 보고 설명을 해 줄 정도로 한국말도 유창하고 똑소리 나는 엄마였다"며 "몇 년 전 귀화해서 동생이 윤지라는 예쁜 이름도 지어줬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딸은 어떻게든 우리가 키울 테니 아무 걱정 말고 편안하게 갔으면 좋겠다"며 "결국 이렇게 보낼 것을…. 너무 아쉽다"고 탄식했다.

한 줌 재로 변한 한 씨의 유해는 육군 헬기로 부평까지 이송돼 세월호 일반 희생자들이 있는 부평 가족공원 만월당에 안치됐다.

minu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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