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24 20:24수정 : 2014.06.24 21:48

[잊지 않겠습니다 8]

‘일본어 교사’ 꿈꾸던 김현정양-엄마가 딸에게

내 딸, 예쁜 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딸. 덧니 현덕. 현짱.

아빠의 감탄사, 아이고~우리 딸 다리 좀 봐. 박세리 언니 다리보다 더 튼튼하다고 놀리면 앙탈 부리던 내 딸.

내 딸. 엄만 아직도 니가 왜 먼저 먼길을 떠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왜 엄마하고 약속 안 지켜. 나중에 나이 많이 들어서 니가 언니 돌봐 준다고, 엄만 걱정하지 말라면서 그렇게 약속해놓고 왜 먼저 간 거니.

하루종일 니 생각만 하는데 왜 니가 없다는 생각이 안 들까. 아직도 니 방, 니 책상, 니 교복 모든게 그대로 인데. 구석에 핀 작은 들꽃을 봐도 니 생각이 나고 살랑 부는 바람에 니가 옆에 있는 느낌이 나.

언니가 현정이 막 보고 싶다고 울어. 엄마가 듣던 말던 학교 갔다오면 계속 쫑알 거리는 니 목소리가 듣고 싶어. 이렇게 이쁜날 친구들과 하루종일 수다 떨면서 쫑알거릴 내딸. 엄만 모든게 미안해. 이렇게 이쁜 바람 엄마만 맞아서 미안해. 따스한 햇살 엄마만 받아서 미안해. 좋은 음악 있다고 이어폰 엄마 귀에 꽃아주던 내 딸. 이젠 엄마 혼자 들어서 미안해. 밥도 엄마만 먹어서 미안해. 아침에 깨워서 내딸 현정이 밥 먹여 줘야 하는데 못해서 미안해.

내 딸 영영 볼 수 없는데 엄만 먹고 자고 이렇고 있는거 미안해. 이젠 내 딸에게 아무것도 해줄수가 없어서 미안해. 수학여행 갔다오면 하복 입어야 하니까 교복 꼭 다려달라고 부탁하고 갔는데 입혀주지 못해 미안해.

내 딸은 없는데 이곳에 없는 내 딸을 찾는 마음 너무나 어둡고 아파.


김현정양은

가끔 엄마와 말다툼을 했다. 그럴 때면 친구들과 카카오톡으로 엄마 흉도 보고 심통도 부렸다. 그러나 채 10분도 안 돼 엄마에게 애교를 부리는 예쁜 딸이었다. 안산 단원고 2학년 1반 김현정(17)양은 그런 아이였다. 그러나 엄마는 이제 더 이상 딸과 말다툼을 할 수 없다. 엄마의 미소를 끌어내려고 얄미울 정도로 아양을 떠는 모습도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

현정이는 담임 유니나(28·여) 교사처럼 일본어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다. 유 교사를 만나고부터 생긴 희망이었다. 현정이는 유 교사를 너무 좋아하고 잘 따랐다. 선생님과 함께 일본 여행을 가기로 약속까지 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탈출하기 쉬운 세월호 5층 객실에 있던 유 교사는 배가 기울자 4층으로 내려가 현정이를 포함한 1반 학생들을 한자리에 모은 뒤 객실 밖으로 탈출시켰다. 2학년 1반은 단원고 10개반 가운데 가장 많은 학생(19명)이 구조됐다. 현정이도 구조됐던 친구들을 따라 밖으로 나오는 것이 목격됐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라진 현정이는 4월21일 숨진 채 발견됐다. 현정이가 그토록 좋아했던 유 교사는 한참 뒤인 6월8일이 되어서야 싸늘한 주검으로 제자들 곁으로 돌아왔다.

안산/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