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29 20:18수정 : 2014.06.29 22:26

[잊지 않겠습니다 10]
작곡가 꿈꾸던 강승묵군-여동생이 오빠에게

사랑하는 오빠에게.

승묵이 오빠, 나는 오빠가 꼭 좋은 곳으로 갔다고 생각하고 있어. 오빠는 대단히 착했으니까. 그리고 지금쯤은 친구들이랑, 여자친구랑 놀고 있을 거 같아.

오빠, 하늘나라에서 오빠의 꿈을 꼭 이루고 우리 가족에게 와서 오빠가 만든 노래 꼭 들려줘. 오빠 보고 싶다. 오빠도 나 보고 싶지? 오빠도 나 보고 싶어했으니까 내 꿈에 나올 거지? 오빠, 나는 오빠랑 했던 것들 다 추억이라고 생각해. 오빠랑 싸웠던 것도, 오빠랑 밥 먹은 것도. 그리고 오빠랑 우리 가족이랑 놀러 갔던 것, 오빠랑 놀았던 것, 오빠 친구들이랑 놀았던 것 등. 오빠랑 함께했던 추억들 말이야. 그래도 오빠와의 추억이 많아서 다행이야.

우리 오빠의 무뚝뚝한 목소리 다시 한 번 듣고 싶다. 오빠의 얼굴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오빠가 살아 있던 모습 다시 보고 싶고 오빠랑 다시 한 번 놀고 싶다. 오빠, 나 오빠와의 추억, 오빠 얼굴, 오빠 목소리 절대 잊지 않을게. 오빠도 내 얼굴, 가족 얼굴, 우리 가족끼리의 추억 절대 잊지 마. 사랑해 승묵이 오빠.


강승묵군은

안산 단원고 2학년 4반 강승묵(17)군의 짧은 삶은 음악 그 자체였다. 자나 깨나 집에서 음악을 들었다. 여러 악기를 다루는 것은 물론이고 편곡과 작곡도 했다. 집 근처에 있는 서울예술대학교 작곡과에 들어가 작곡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승묵이가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것은 중학교 때부터였다. 재미삼아 피아노와 기타 학원에 갔는데, 전자기타와 바이올린, 하모니카까지 독학으로 배워 연주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아예 작곡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중학교 친구들을 모아 밴드도 만들었다. 승묵이는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친구들과 5월3일 열릴 예정이었던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 나갈 계획이었다.

엄마 아빠는 세월호 침몰사고가 난 지 열흘 만인 4월25일 아들을 찾아 안산으로 돌아왔다. 승묵이네가 운영하던 슈퍼마켓의 잠긴 문에는 승묵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쪽지글이 수천 개나 붙어 있었다. 승묵이의 부모는 슈퍼마켓 문에 ‘감사합니다. 많은 분이 걱정해주셨는데 승묵군은 더 이상 춥지도 무섭지도 않은 곳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지만 기억하겠습니다. 응원해주시고 걱정해주신 주민·시민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글을 써 붙였다.

승묵이는 4월27일 안산 군자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을 마친 뒤, 지금은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다.

안산/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