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29 20:32수정 : 2014.07.29 22:57

[잊지 않겠습니다]

“예쁜 천사가 돼있겠지” 지혜에게 엄마가

엄마가
불러도 대답없는 지혜야. 하루에도 몇 번을 부르고 불러도 지겹지 않은 예쁜 우리 지혜가 다시 돌아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행 떠나던 날, 매일 있었던 일을 찍어서 보내준다던 약속, 보고 싶어도 울지 말고 아빠랑 언니,루비랑 조금만 기다리라던 약속. 지금이라도 지켜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는 아직도 지혜가 올 시간이 되면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아 집에서 항상 기다리게 된단다. 지혜는 엄마랑 성당 가면서도 투정 한 번 부리지 않고 먼길 걸어가는 내내 꿈 많은 여고생답게 종알종알하던 행동이 엄마는 너무 보기 좋아서 행복했어.

지혜가 저번에 말했지. 엄마랑 뭐든지 같이해야 즐겁고 재밌다고. 하지만 지금 엄마는 지혜가 옆에 없으니 밥도 맛이 없고, 지혜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봐도 하나도 재미가 없어. 엄마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 싫고 너와 함께했던 모든 일이 4월 16일 이후로 멈춰버렸단다. 어디를 가던 지혜랑 다니면 없던 용기와 자신감이 넘치게 되고 엄마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언제 어디서나 엄마에겐 자랑스러운 딸이었단다.

내 몸에서 이렇게 예쁘고 똑똑한 딸이 태어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때가 너무 많아서 꿈은 아니겠지 하며 몸을 꼬집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젠 그런 지혜가 곁에 없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 모든 게 원망스럽고 때론 하느님마저 미울 때가 많아.

우리 지혜는 예쁜 천사가 되어있을 거라 믿어. 지상에서 못 이룬 꿈, 천상에서는 꼭 이루길 바란다.

아빠가
우리 이쁜이 지혜야, 너무도 보고 싶고 정말로 한 번 보고 싶다.

아빠와 딸로 인연을 맺어 지내온 시간이 너무도 짧았던 것이 원망스럽고 후회스럽구나. 아빠는 너에게 해줄 것이 너무 많이 남아있는데…. 불러 보고 또 불러 봐도 지금의 현실이 너무 야속하구나.

4월16일, 엄마와 아빠의 결혼 기념일. 제주도 도착하면 전화해주겠다던 그 약속 잊어버린 건 아니지? 언제까지라도 기다릴게. 엄마와 아빠의 희망, 미소 천사, 우리 이쁜이. 아직도 그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구나. 보고 싶다. 무능한 아빠 만나서 이렇게 된 것 같아 너무 가슴 아프고 정말로 미안하구나. 용서해 줄 수 있지?

부디 좋은 곳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으렴. 나중에 엄마, 아빠, 언니 만나서 그동안 못했던 일 하면서 재미있는 시간 가져보자꾸나. 약속해 줄 수 있지? 미안하고 정말로 또 미안해. 그리고 많이 사랑했었어.

언니가
항상 보고 싶은 지혜야. 친구들, 선생님들이랑 잘 지내고 있지? 네가 우리 가족 곁을 떠난 지 벌써 4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액자 안에 왜 네 사진이 있는지 믿기지가 않아. 아침에 교복 입고 급하게 학교 갈 준비 하는 모습이랑,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엄마 옆에 앉아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 얘기하던 모습, 네가 하던 모든 모습들이 언니 눈에 아직 생생해서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아.

지혜야, 언니는 태어나서부터 이제까지 동생인 너에게 잘 해준 게 하나도 없어서 미안할 뿐이야. 또 언니인 내가 조금 더 참고 양보하지 못한 것, 네 얘기를 더 귀 기울여 듣지 못한 게 많이 후회가 돼.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후회되는 건 언니가 대학교에 다니면서 집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다 보니까 대화할 시간이 줄어들었잖아. 그리고 서로 얼굴 볼 시간도 줄어들어서 수학여행 가는 당일에도 너를 보지 못한 게 너무 속상하고 가장 후회가 되더라.

요즘에 항상 느끼고 있는 건데 있을 때의 소중함을 언니가 잘 느끼지 못한 것 같아. 언니는 아직도 너랑 못 해본 것도 많고 하고싶은 것도 아주 많은데…. 우리 나중에 만나서 꼭 다 해보자. 그러니까 언니 만날 때까지 아프지 말고 잘 지내고 있어야 해. 사랑한다, 내 동생♡


 

권지혜양은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10반 권지혜(17)양은 아빠와 엄마의 결혼기념일(4월16일)을 꼭 기억했다. 지난해 결혼기념일에도 축하 케이크와 선물을 사왔다. 4월15일 아침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면서도 엄마에게 “결혼기념일 아침에 꼭 전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지혜는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아빠와 엄마의 결혼기념일이었던 4월16일, 지혜는 세월호와 함께 전남 진도의 차가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사고 6일째인 4월21일 숨진 채 엄마의 품으로 돌아왔다.

잠자기 전 지혜는 불을 끄고 엄마와 함께 누워 친구와 학교 이야기 등을 하며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엄마가 잠든 것을 보고 살며시 자기 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얼마 안 되는 용돈을 아껴 엄마에게 양산과 화장품 선물을 했다. 엄마를 끔찍이도 생각했던 아이였다.

재능도 많았다. 성당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고, 춤과 노래 등 못하는 게 거의 없었다. 성격도 착하고 밝아 늘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줬다. 수학여행을 가기 전에는 댄스경연대회에 나가겠다며 친구 대여섯 명과 함께 주말마다 춤을 연습했다고 한다. 공부도 전교에서 손꼽을 정도로 잘했다. 지혜는 치과의사가 꿈이었다.

아빠는 막내딸을 잊지 못해 요즘도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오면 안타깝게 지혜를 찾는다. 엄마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안산/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