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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5-07-21 19:02

킹 목사·셀마 행진 다룬 영화 ‘셀마’의 한 장면.
킹 목사·셀마 행진 다룬 영화 ‘셀마’의 한 장면.
킹 목사·셀마 행진 다룬 영화 ‘셀마’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떨쳐 일어나 당당히 이 신념을 실현해 낼 것이라는 꿈입니다. 우리는 진실이 스스로 그 가치를 증명할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진실이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입니다.”(1963년 8월28일 마틴 루서 킹의 연설 중에서)

1965년 3월7일 미국 앨라배마주의 소도시 셀마에서는 미국의 역사를 바꿀만한 ‘사건’이 벌어진다. 80대 노인, 중년의 부인, 소년·소녀 등 500여명의 시위대가 흑인 투표를 막는 남부 주들의 행태에 항의해 셀마에서 앨라배마 주도인 몽고메리까지 80여㎞를 평화롭게 행진하러 나섰다. 구호를 외치지도, 피켓을 들지도 않은 이들은 오직 침묵으로 항의하며 주지사와의 면담을 요구했다. 앨라배마강 위에 놓인 에드먼드 페투스 다리를 지날 무렵, 이들의 평화시위는 곧 유혈사태로 번지고 만다. 말을 타고 정렬한 주 경찰은 최루탄을 발사하고, 무차별적으로 곤봉을 휘두르며 시위를 진압했다. 미국 흑인 인권사에 획을 그은 이 사건을 역사는 ‘피의 일요일’이라고 명명했다. 전국에 생방송된 이 날의 장면은 흑백을 떠나 ‘양심’을 가진 모든 미국인들의 가슴을 흔들었다.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80여㎞
흑인투표권 요구 행진 유혈진압

흔들리고 때론 속물적이기까지 한
마틴 루서 킹 목사 인간적 모습도

셀마 50년 지나도 인종차별 여전
현실에 대한 비판과 참회 담아


23일 개봉하는 영화 <셀마>는 바로 이 ‘셀마 행진’을 배경으로 한다. 행진의 중심에는 비폭력 저항운동을 주창한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1929~1968)이 있었다. 그는 셀마 행진을 준비하기 전 이미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거물’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현실은 암흑이다. 남부 주들에서는 흑인들의 합법적인 투표권 신청을 번번이 거부하고, 킹 목사마저 린치를 당할 정도로 흑인에 대한 편견은 뿌리 깊다.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마틴 루서 킹을 단지 ‘위인’으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스스로의 신념과 지식, 능력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한다. 때로는 갈팡질팡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모습도 보인다. 계속해서 살해 위협에 시달리는 가족에게는 아무런 방패막이가 돼 줄 수 없는 나약한 가장일 뿐이다. 한편으로는 흑인 인권운동의 방향을 놓고 행동주의자인 말콤 엑스와 경쟁을 벌이는 ‘속물’근성도 드러낸다. 대결보다는 정치적 타협을 택하는 현실주의자이자 매스컴에 민감한 인기영합주의자 같은 모습도 보인다. ‘영웅’이 아닌 ‘인간’ 킹 목사의 내면을 다층적으로 보여주며 관객의 깊은 공감을 끌어낸다. 역사 속에서 살아 나온 듯 마틴 루서 킹을 완벽히 재연한 배우 데이빗 오예로워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킹은 ‘피의 일요일’ 이후 “사회적 변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라며 각계각층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동참을 호소한다. 하지만 3월9일 2차 행진에서 킹은 또 다른 유혈사태를 우려해 회군을 결정한다. 그 사이 시위에 참여했던 백인 목사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폭행으로 숨지면서 내부 분열까지 일어난다. 결국 킹이 선택한 방법은 ‘정치적 타협’. 린든 존슨 대통령과 ‘차별 없는 투표권 법제화’에 대한 대타협을 이룬 킹은 3월21일 3차 행진에 나선다.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5일 동안 이어진 80㎞의 행진에는 남녀노소, 흑백을 막론한 2만5000명의 시민이 참여한다. 영화와 실제 기록 사진이 겹쳐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글로리’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랩과 소울이 어우러진, 흑인 특유의 감성이 빛나는 이 노래는 올해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다.

올해는 ‘셀마 행진’ 50주년이 되는 해다. 올해 기념식에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부인 미셸과 두 딸의 손을 잡고 참석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은 “셀마의 행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였다. 인종차별이 여전히 진행 중인 엄중한 현실의 무게를 반영한 말이다. 지난해 7월 뉴욕에서는 불심검문 도중 흑인인 에릭 가너(43)가 경찰에 목 졸려 숨졌고, 미주리주 퍼거슨에선 비무장한 마이클 브라운(18)이 경찰의 총격으로 숨졌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선 장난감 총을 들고 있던 타미르 라이스(12)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 곳곳에서 흑인들의 항의 시위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영화 <셀마>는 과거 위대한 승리를 이끌어낸 마틴 루서 킹과 ‘행동하는 양심’을 지닌 많은 사람들에 대한 헌사이자, 현재에 대한 혹독한 비판과 참회이기도 하다.

흑인 노예 문제를 다뤄 지난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노예 12년>의 제작자 브래드 피트가 오프라 윈프리와 손잡고 만든 영화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오프라 윈프리는 투표권을 얻기 위해 애쓰는 흑인 여성 ‘애니 리 쿠퍼’ 역으로 출연까지 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영화사 찬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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