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국민보도연맹 최종판결, 희생자-유족 모욕"
한국전쟁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연합회, 서울고등법원 민사13부 판결 비판
12.05.09 13:49 ㅣ최종 업데이트 12.05.09 13:49 윤성효 (cjnews)

"조부모 형제들의 억울한 죽음이 어찌 돈으로 해결될 수 있겠나?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한 것은 배상 그 자체보다는 우리 사회로부터 억울한 피학살이었다는 것을 인정을 받기 위한 투쟁의 하나일 뿐이었다. 따라서 이번 고등법원의 판단은 희생자와 우리 유족들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라 조롱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연합회'가 9일 서울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울산·오창 국민보도연맹사건 배상청구소송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3부(재판장 문용선 부장판사)는 지난 4월 13일 울산·오창 국민보도연맹사건에 대해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희생자한테 8000만 원, 배우자한테 4000만 원, 자녀한테 800만 원, 형제한테 4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해, 지금까지 법원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반인륜적 국가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한 것이라서 관심을 끌었다.

이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5~2010년 사이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여 보고서를 내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진실화해위 조사 발표 이후부터 공소시효가 시작된다고 본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2007년 '울산 국민보도연맹'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 결과를 내놓았고, 이에 희생자 유족 508명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유족들은 1, 2심에서 일부 승소했고, 대법원은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했으며, 서울고등법원은 파기환송심을 열어 배상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오창 사건'에 대해 유족 497명이 소송을 냈는데 1심 법원이 '소멸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고, 유족들이 항소했던 것이다. 울산 사건은 1950년 경찰·군인들이 국민보도연맹원을 강제로 구금한 뒤 집단 총살한 사건을 말하고, 오창 '창고' 사건은 충북 청원군 오창면과 진천군 진천면 일대에서 군인·경찰 등이 국민보도연맹원을 창고에 구금시켜 놓고 미군 전투기 폭격을 요청해 집단 살해한 사건을 말한다.

"최종 판결은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모욕"

전국유족연합회, 한국전쟁 민간인 피학살자 재경유족회,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의문사 유가족 대책위원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는 이날 "울산·오창 국민보도연맹 사건에 대한 최종 판결은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모욕이다"는 제목의 회견문을 발표했다.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 이들은 "심각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그동안 국가 범죄에 의한 피해 사건은 물론 교통사고 등 과실치사사건에 의한 피해배상에도 터무니없이 못 미치는 것"이라며 "이는 우리 유족들에겐 또 다른 모욕이 아닐 수 없으므로 이번 고등법원판결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가는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무자비하게 살육을 자행한 후에도 희생자의 가족들에게 50여 년이 넘도록 연좌제라는 고통을 주었으며,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든 감시와 탄압체제를 만들어 유족들의 사회진출은 말할 것도 없이 생존의 기회조차 박탈했다"고 덧붙였다.

진실화해위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10년부터 활동이 종료됐는데, 이에 대해 이들은 "2005년 진실화해위의 조사가 시작되고 국가 기관에 자백에 의해 유족들이 제기했던 의혹의 상당 부분이 진실로 밝혀졌다. 그러나 2010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며 "발굴하다만 유골은 방치되었고, 국가의 위령제 지원도 1회에 그치고 말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학살사건을 역사에 반영하라는 권고는 휴지조각에 불과했고, 조사와 연구 활동 역시 중단되었다. 국가 스스로의 배상 노력도 전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족들에게는 국가배상 소송만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덧붙였다.

서울고등법원은 4·11총선 이틀 뒤 판결했는데, 이에 대해 이들은 "재판부가 총선결과를 바탕으로 정치적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강하게 갖고 있다"며 "만약 재판부가 정치적 논리에 따라 이 사건을 판단한 것이라면 우리는 이를 더 이상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유족연합회 등 단체들은 "이번 판결은 우리 유족들에게 또 다시 통한의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며 "이번 재판부의 결정이 공평하지 못했고, 국가라는 강자의 편을 들은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군사독재시절의 사법부가 정권의 시녀노릇을 하였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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