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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5.11.24 08:46:57 (*.96.151.82)
6814
 등록 :2015-11-23 18:50
한 인간의 일생을 한마디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인간의 삶 자체가 워낙 다층적이라 어느 측면을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180도 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든 한평생을 관통하는 삶의 원칙과 고갱이는 있기 마련이다.

엊그제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민주화’이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이유가 있다. 이는 그가 민주주의자로 살았다기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진전되는 과정(민주화)에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미성숙된 민주주의가 그나마도 질식될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그는 극적인 반전을 통해 민주화의 도도한 물결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게 했다.

영원할 것 같은 유신독재 정권을 종식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 이도 그였다. 그는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며 극으로 치닫던 유신정권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 보복으로 1979년 10월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하자 부산·마산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이를 둘러싼 유신정권 내부의 갈등으로 유신정권은 한 달도 채 못 돼 종말을 맞았다.

유신독재 종말 뒤 잠시 반짝했던 한국 민주주의는 5·18 광주학살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군사독재에 의해 다시 암흑 속으로 가라앉았다. 김 전 대통령은 1983년 5월18일 민주 회복 등 ‘민주화 5개 항’을 내걸고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을 강행했다. 그의 단식으로 숨죽이고 있던 민주화의 불길이 다시 살아났고,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지면서 전두환 군사정권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3당 합당으로 한국 정치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지만 그는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문민시대를 열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군대 사조직인 하나회 청산, 금융실명제 실시 등 민주화의 길을 걸었다. 김영삼 정부를 거치면서 민주화라는 말은 현실정치에서 그 의미를 잃었다. 힘들었던 민주화 과정이 마무리되고 민주주의 시대가 열린 듯했다. 그의 명언으로 회자되는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그 ‘새벽’이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보였다.

과연 그런 새벽이 왔는가. 그래서 한국 민주주의가 밝은 햇살을 받으며 활짝 꽃을 피우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조차 민망할 만큼 지금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암담하다. 잠시 새벽인가 했더니 다시 캄캄한 어둠 속으로 뒷걸음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는 새로운 방식으로 질식당하기 시작했다. 폭압적인 군사독재 대신 합법의 탈을 쓴 검찰과 경찰 등을 동원한 문민탄압이 강화되고, 나라와 국토는 소수 집권세력의 이익 추구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명박 집권 2년도 못 돼 검찰의 ‘표적 수사’에 시달리던 전직 대통령이 자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퇴행에 분노하며 “집회에 나가든, 인터넷에 글이라도 쓰든, 그도 저도 아니면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라”고 호소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미명 아래 민주주의의 퇴행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공안세력들이 청와대를 비롯한 주요 권력기관을 장악하고, 자신의 국정 방향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종북 딱지를 붙이며 공안정국을 조성하려 한다. 최근에는 거센 반대에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상정하는 정상적인 사회는 그의 아버지가 집권했던 유신독재체제인 듯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반민주적이고 비정상적인 행태를 이해할 수가 없다.

정석구 편집인
정석구 편집인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이 마무리했다고 생각한 민주화가, 자신의 정적이었던 박정희의 딸에 의해 짓밟히는 걸 지켜봤을 것이다. 더욱이 민주주의 퇴행에 앞장서고 있는 이는 그의 ‘정치적 아들’임을 자임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다. 그가 목숨 걸고 열었던 민주주의의 새벽이 ‘구국의 결단’이라던 3당 합당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의해 다시 짙은 어둠 속에 잠기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민주화의 큰 산이었던 그를 떠나보내는 심정이 착잡할 수밖에 없다.
 

정석구 편집인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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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아버지 뼛조각 하나라도 찾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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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33   2016-03-08
대전 | 2016.03.07 09:52:55 서어리 기자 · 해체 앞둔 진실화해위…"산적한 과거사 문제는 어쩌고" "사랑니까지 다 나면 몇 살이죠?" "아마 스물네 살 정도?" "젊은 양반이셨네. 아이고" 흙을 털어내니 흰색 빼곡한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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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90   201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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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直報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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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6 극단 코끼리만보 _ 민간인학살을 다룬 연극 <말들의 무덤> file
ra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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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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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한국전쟁유족회 임시총회를 비판한다.(김종현 상임의장에게 보내는 경고문)|●유족신고및 가입회원 자유 게시판● 덕파 | 등급변경▼ 준회원 정회원 우수회원 특별회원 | 조회 10 |추천 0 | 2012.04.21. 11:29 http://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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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트라우마 치유센터 필요하다" 광주 5.18트라우마센터 개관…제주는 현안서 제외 --> 등록 : 2012년 08월 03일 (금) 09:06:37 | 승인 : 2012년 08월 03일 (금) 09:07:43 최종수정 : 2012년 08월 03일 (금) 09:06:37 박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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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81   2015-08-03
▶ 갈무리 도서를 구입하시려면? 인터넷 서점> 알라딘 교보 YES24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인터넷영풍문고 전국대형 서점>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북스리브로 서울지역 서점> 고려대구내서점 그날이오면 풀무질 더북소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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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46   2012-09-08
//--> /* function openPop(){ window.open('http://www.m-kok.com/w2p/mkok.jsp?mcode=23229&nid=13337','elis','width=900,height=730,top=0,left=0,scrollbars=no'); } */ </s...  
986 해남군유족회 합동위령제 안내
오원록
11442   2011-11-06
해남군유족회 제61주기 제6차 합동위령제를 아래와같이 거행코져 하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일시 :2011.11.26(토) 오후 2시-4시 장소 : 해남군 문화예술회관 다목적실 ` 연락처 : 회장 오원록 (010-9972-3137) 사무국장...  
985 "국가 주도 학살사건, 공소시효 없애야" / 연합뉴스
[관리자]
11401   2012-10-31
"국가 주도 학살사건, 공소시효 없애야" 함평 유족회, 한국전쟁 양민학살 등 시효 폐지 주장 (함평=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국가가 주도한 학살에 민간인이 희생됐는데 가해자인 국가가 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 아닙니까...  
984 덕양을지역 민주통합당 경선이 내일(3/12,월)부터 시작합니다
이치범의 사람사는세상
11398   2012-03-11
덕양을지역 민주통합당 경선이 내일(3/12,월)부터 시작합니다 4.11 총선에서 통 크게 합쳐 시원하게 이길 이치범 후보를 꼭 추천해 주십시오!! **모바일투표 3월 12일(월) - 13일(화), 오전 10시 - 오후 9시 **현장투표 3월 14일(수)...  
983 [배달의 한겨레] 테러방지법 반대 릴레이 필리버스터 특집
[관리자]
11372   2016-02-25
등록 :2016-02-25 01:36수정 :2016-02-25 08:07 2월25일 뉴스 브리핑 <디지털 한겨레>가 매일 아침 <한겨레>에 실린 수많은 콘텐츠 가운데 주요 콘텐츠 몇 가지를 골라 독자 여러분께 브리핑 해드리는 ‘배달의 한겨레’, 2월25일...  
982 국가범죄를 멈추어 주오..
융이
11289   2012-05-29
死離捌死佾死(단기428414) 咀呪(저주)!!! 이제, 60여년의 국가범죄를 그만 멈추시요! 당신들은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대역죄를 저질러왔오! 막강한 권력 뒤에 숨어 대한민국 국민들을 그만 울리시오! 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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