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독립유공자 391명→716명으로 늘어날 가능성

국가기록원 3·1운동 피살자 명부 원문 공개

2014/02/27 12:55 송고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 3·1 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 군경이 자행한 수원(현 경기도 화성군) 제암리 집단학살로 사망한 24명의 이름이 '3·1운동 피살자 관련 명부'를 통해 확인됐다.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명의 민족대표 중 1명인 양한묵 선생의 순국 당시 정황도 확인할 수 있다.


국가기록원은 다음달 1일 3·1운동 95주년을 맞이해 1953년 정부가 작성한 3·1 운동시 피살자 645명 명부의 원문 이미지를 홈페이지(http://www.archives.go.kr)를 통해 온라인으로 공개한다고 27일 밝혔다.


이 명부는 작년 6월 주일 한국대사관 청사 신축에 따른 이사 과정에 발견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됐다.


명부의 등재 인원은 최종적으로 630명에서 645명으로 15명 늘었다. 함께 발견된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와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에서 일부 3·1운동 피살자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지역별로는 경남이 185명으로 많았고 서울·인천·경기(177명), 충남(68명), 경북(47명), 북한(47명), 충북(37명), 강원(30명), 전남(26명), 국외(17명), 전북(4명) 등 순이다.


이번에 원문이 모두 공개되는 명부에는 일본 경찰이 3·1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자행한 수원 제암리 집단학살 사건으로 순국한 안정옥, 안유순, 안경순 등 24명의 이름이 포함돼 있다.


일본 군경은 1919년 3월 31일 제암리에서 가까운 장터에서 1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벌어진 대대적인 만세시위와 4월 1일 주변 산봉우리 80여 곳에서 봉화를 올리며 벌어진 만세시위 등 3·1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4월 15일 수원 제암리 주민들을 기독교 교회당에 모이게 한 후 출입문과 창문을 잠그고 총칼로 집단학살한 뒤 교회당을 불태웠다.


이 사건은 3·1운동 당시 일제의 대표적 보복 학살사건이다. 당시 일본 군경은 불 속에서 뛰쳐나오거나 길에 나왔다가 달아나는 사람에 대해 발포하거나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 당시 교회당 안에서 22명, 밖에서 6명 등 모두 28명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본 군경은 민가에도 불을 질러 31호가 불타버렸다.


명부에는 또 33명의 민족대표 중 1명인 천도교 종교지도자 양한묵 선생이 3·1운동을 하다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1919년 7월 29일 오후 5시 순국했다는 사실도 나와 있다.


명부의 순국 상황에는 총살부터 옥사, 칼로 타살·도살, 구타사망, 고문치사 등 피살 방법이 자세히 기록돼 있으며 읍·면별로 피살자들의 성명, 나이, 주소와 순국일시, 순국장소 등도 나와 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피살자 명부에 수록된 612명 중 325명이 새롭게 확인돼 독립유공자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3·1운동 독립유공자가 391명이기 때문에 독립유공자는 716명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명부에 수록된 이들 중 241명은 이미 포상을 받았고 46명은 입증자료 부족으로 포상이 보류됐던 인물이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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