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0.27 21:59수정 : 2014.10.28 14:01

잊지 않겠습니다

구보현양 엄마가 세상의 엄마들에게

저는 단원고 2학년 10반 구보현(17)의 엄마입니다. 보현이는 저를 똑같이 닮은 딸이었습니다. 손재주가 좋아서 만들고 꾸미기를 잘해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단원고 장학금도 받고 건축가의 설명회가 있는 날이면 건축박람회에 참여해 대학 갈 준비도 하던 꼼꼼한 딸이었습니다. 붓과 페인트 물감이 주인을 잃어버린 채 방 한쪽 모퉁이 상자에 담겨 있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딸은 틈틈이 시간 날 때면 기타, 드럼, 알알이 예쁜 구슬을 꿰어 만드는 비즈 공예를 배우러 다녔고 춤추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엄마한테 다음에 바느질을 가르쳐 달라고 했던 아이였습니다. 이제 곧 3학년이라 공부도 해야 하고 디자인 학원도 다녀야 하고, 고민이 많던 아이였습니다. 아침이면 “빨리 일어나~ 엄마~ 엄마~”, “왜?”, “엄마 사랑해 히히.” 빙그레 웃으며 사랑한다고 재잘거리는 딸 목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엄마, 엄마는 내가 왜 좋아?”, “음, 네가 엄마랑 똑같이 닮아서 이뻐서 좋아”, “나도 엄마 딸인 게 너무 좋아.”

색상은 다르지만 딸과 똑같은 우산, 가방, 목도리 등을 샀습니다. 딸의 우산은 물에 잠겼던 캐리어 속에서 녹이 슨 채 나왔습니다. 함께 살아가고 닮아간다는 것, 이제는 다 커서 엄마의 마음을 알고 인생의 친구가 되어 함께 걸어갈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할 수 없게 돼 가슴이 아려옵니다. 요즘은 우리 아이와 비슷한 학생이 다가오면 깜짝 놀라기도 하고 딸 또래 아이와 엄마가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아빠 등에 매달려 ‘나무늘보 놀이’하고, 아빠 한쪽 다리에 매달려 웃고 있는 딸. “오늘은 무슨 놀이야?”, “응? 코알라놀이.” 이렇게 유치한 놀이를 하며 웃음이 떠나질 않았고 너무나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애교와 웃음으로 삼촌 여섯 명의 사랑을 받은 아이. 용돈이 많이 생겨 좋다던 아이. 삼촌들도 귀염둥이 조카가 없다는 사실에 힘들어합니다. 우리 집 웃음상자였는데, 보현이 오빠는 가슴 통증이 생겨서 힘들어하고 아빠는 두통이 찾아와 입원했었습니다. 원인은 극심한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우리 가족은 보현이를 잃은 빈자리를 아파하고 가슴앓이하며 웃음을 잃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화꽃이 피고 단풍이 단원고 앞에 물들었습니다. 너무 예쁘고 아름다웠을 계절이 가슴 서글픈 계절이 되어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세월호 선원들 재판을 보러 광주지방법원에 다녀왔습니다. 자식을 잃은 가족들은 눈물과 고통 속에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들을 필사적으로 구조했던 화물차 기사님은 ‘학생들을 더 살리지 못했다’며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데, 아이들을 버린 저들에게 조금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좋으련만…. 양심의 가책을 느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