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여주서 한국전 당시 민간인 유해 33구 발굴


(여주=연합뉴스) 강창구 기자 = "읍사무소 직원이던 아버지가 빨갱이로 몰려 경찰에 의해 희생됐습니다. 인민군에게 붙잡혀 두 달간 행정업무를 봤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한국전 당시 경찰에 의해 살해된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여주 곳곳을 찾아 헤매던 박영환(70·성남시 분당구)씨는 60여년 묵은 가슴 속 한을 마침내 풀 수 있게 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지난 2011년 5월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 뒷산에서 유해발굴작업도중 민간인으로 추정되는 유해 33구를 수습했기 때문이다.


국방부와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6·25전사자 판정 심의위원회는 사망 당시 나이(10∼30대), 유품, 매장형태, 주민 증언 등을 근거로 유해는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으로 결론내렸다.


여주유족회 임시회장인 박씨는 "발굴된 유해 가운데 아버지의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1·4 후퇴 때 경찰이 여주초등학교 옆 임시창고에 수용했던 부역 혐의자를 야산으로 끌고 가 모두 총살했다는 증언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당시 피란을 가지 못했던 아버지는 인민군에게 붙잡혔다가 추후 아군이 들어오면서 부역자로 내몰려 다시 끌려갔다"며 "그때 내가 7살이었고 아버지가 수용소에서 햇볕을 쐬고 계시는 장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마을 토박이 홍정천(81)씨도 당시 경찰에 의해 민간인이 살해됐던 참혹했던 장면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홍씨는 "어느 날 새벽 경찰이 10여명을 끌고 와 참호속에 집어넣고 총을 쏴 살해한 뒤 매장하고 돌아갔다"며 "당시 내 나이 17살이었다. 분명히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홍씨는 "인민군 치하에서 빨갱이짓을 한 사람들을 모두 경찰에서 가둬놓고 인민군이 다시 몰려오자 모두 죽였다"며 "다행히 우리 동네에서는 피해자가 없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현재 무연고 유골을 임시 보관하고 있고 여주시에 무연고 유해 처리를 요청했다.


여주시 관계자는 "지난 2월말 국방부 유해감식단으로부터 민간인 무연유골 33구가 나왔다며 처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그러나 무연유골은 발굴한 부서에서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동묘지에 안장할 수는 있지만, 유족회에서 위령탑을 세워줄 것과 DNA 검사를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방부 유해감식단 관계자는 "능서면 왕대리에서 민간인 유해가 발굴됐고 유해는 현재 감식단이 임시 보관중"이라고 밝혔다.


kcg3316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4/04 10:52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