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5-04-12 20:43수정 :2015-04-13 09:37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닷새 앞둔 11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의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폐지와 세월호 선체 인양을 요구하는 문화제’를 마친 참가자와 추모객들이 청와대 쪽으로 향하다 경찰이 설치한 차벽에 막혀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형제자매들이 보내는 편지
52명이 그리움으로 쓴 편지들
손팻말로 만들어 광화문광장에
시민들에 ‘잊지 말아달라’ 메시지
“우리를 봐주는 것만으로 위로돼”
“아이들 생각나…깊은 슬픔 공감”
“보고 싶은 다윤아. 언니가 많이 기다려. 너무 보고 싶다. 왜 네가 아직도 못 돌아오고 있는지 화가 나고, 너를 생각하면 많이 아프지만 그래도 널 생각하면서 잘 버틸게. 언니 동생이어서 고마워. 사랑해. 2학년 2반 다윤이 언니가.”

“호연아, 잘 지내고 있지? 너를 너무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어서 너무 힘드네. 네가 옆에 있을 때 더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해.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언제나 내 동생이어서 고마웠고 자랑스러웠어. 사랑한다. 2학년 4반 호연이 형이.”

“예슬이 언니, 정말 많이 보고 싶어. 내 걱정, 엄마 아빠 걱정 하지 말고 행복하게 나중에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줘. 사랑해. 2학년 3반 예슬언니 동생이.”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들의 형제자매 52명이 1년간 눌러온 그리움을 담아 동생과 언니, 형에게 보내는 편지가 줄지어 섰다. 형제자매들이 스케치북에 손수 적은 메시지를 사진으로 찍은 뒤 이를 손팻말로 만들었다.

고 최윤민양의 언니 최윤아(24)씨가 ‘너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이름으로 기획한 이날 행사에는 희생자 형제자매 9명과 시민 100여명이 참여했다. 최씨는 지난해 12월부터 희생자·실종자 형제자매 52명한테서 메시지를 받기 시작했다. 최씨는 “참사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들이라고 하면 보통 생존학생들만 떠올린다. 하지만 희생자·실종자들의 형제자매도 슬퍼하고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편지 수신자 ‘너’는 희생당한 이들 모두와 살아 있는 시민 모두를 지칭한다.

손팻말은 흰색 마스크를 착용한 희생자 형제자매와 시민 50여명의 손에 들렸다. 행사에 참여한 형제자매들은 여전한 아픔과 함께 위로를 느낀다고 했다. 고 박성호군의 누나 박보나(21)씨는 “피켓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시울이 젖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우리들의 슬픔과 공감하는 모습은 큰 위로가 됐다”고 했다. 고 남지현양의 언니 남서현(23)씨는 “우리도 슬프고, 진실 규명을 원하고, 치유받고 싶다고 외치고 싶었다. 오늘 피케팅을 하고 나니 후련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유가족이라는 사실을 더욱 절감하게 돼 마음이 더 아프기도 하다”고 했다.

일반시민으로 손팻말 행사에 참여한 이태건(41)씨는 “아픔에 공감하고 싶었지만 거듭 망설이다 이렇게 끝자리에 서게 됐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내 옆에 서기 시작했다. 이렇게 작은 실천이 희생자들에게, 진상 규명 작업에 힘을 보탤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김민재(24)씨는 손팻말에 적힌 글귀를 하나하나 읽다가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김씨는 “사실 세월호 참사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는데 오늘 가족들이 쓴 절절한 메시지를 보니 유가족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김일현(44)씨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니 메시지 하나하나에 공감할 수 있었다. 이런 슬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희생자 형제자매들은 이날 시민들에게도 메시지를 띄웠다. “내 동생은 전교 1등이었고, 안산시 애향장학생이며, 대한민국의 검사가 될 아이였습니다. 나는 ‘평생 친구’를 잃었고, 나의 부모님은 ‘삶의 일부’를 잃었으며, 이 나라는 ‘귀한 인재’를 잃은 것입니다. 잃어버렸기에 나서야 하고,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합니다. 남의 일이라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관련 영상] 세월호의 진실, 재판만으로 인양할 수 없다/ 불타는 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