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5-04-15 20:43수정 :2015-04-16 11:29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전 전남 진도 동거차도 앞바다 사고 해역을 찾았다. 고 박예슬 양 아버지가 진도 들녘에서 가져온 갓꽃을 바다에 던지고 있다. 진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르포] ‘세월호 1주기’ 참사 현장

유가족 207명 페리 타고 1시간 반
실종자 이름 일일이 부르며 오열
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전 10시40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부근 맹골수도.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2학년 8반 이승민군의 어머니 이은숙(51)씨가 애써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울부짖었다.

“아이고 내 새끼야. 승민아, 어디에 있니?”

그는 세월호 사고 해역이 다가오자 여객선 뱃전에서 까치발을 해 가며 침몰 현장을 찾으려 애썼다. 그의 품에는 외아들한테 건넬 노란 소국 한 다발이 안겨 있었다. 그는 한동안 아들의 이름을 부르다 “너무나 보고 싶어요. 미칠 것만 같아요. 내가 대신 죽어 아들을 살리고 싶어요” 하며 목놓아 울었다. 어머니의 통곡 소리는 진혼곡처럼 잔잔한 바다 위로 나지막이 퍼져갔다.

진도 팽목항에선 이날 아침 221t급 여객선인 한림페리 5호가 사고 현장을 향해 출발했다. 배에는 지난해 자녀들의 주검을 수습했던 ‘통곡의 항구’ 팽목항을 찾아온 유가족 207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저마다 자식이 남긴 교복 이름표를 모자에 달거나 학생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하늘나라로 수학여행을 떠나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배어났다.

1시간30분을 달린 배가 침몰 현장에 닿았다. 무거운 침묵이 감돌던 배 안이 갑자기 술렁였다. 유가족들은 앞다퉈 선실 밖으로 나갔다. 일부는 뱃전에 머리를 대고 기도를 하고 서로 부둥켜안기도 했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노란 사각뿔 몸체에 ‘세월’이라고 쓰인 침몰 장소를 알리는 부표만이 파도에 흔들리며 이들을 맞이했다.

“은화야, 다윤아, 양승진·고창석 선생님, 권재근님, 혁규야….”

유가족들은 실종자 9명의 이름을 부르며 목놓아 울었다. 금세 깊은 비탄이 배 안과 사고 해역을 덮었다. 유가족들은 한해 전의 분노와 슬픔이 되살아나는 듯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배 난간을 붙잡았다. 이들은 국화와 백합, 안개꽃 등을 바다로 던지며 희생자의 안식을 기원했다.

노란 갓꽃 다발을 던진 2학년 3반 박예슬양의 동생 예진(17)양은 “언니를 만나고 싶어 학교를 쉬고 왔다. 금방이라도 언니가 내 이름을 부르며 돌아올 것만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삭발한 아버지 박종범(49)씨도 “예쁘고 슬기롭게 자라라고 지은 딸 이름인데 이루지 못한 꿈이 되고 말았다. 한번만 단 한번만 딸을 꼭 안아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애통해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전 전남 진도 동거차도 앞바다 사고 해역을 찾았다. 진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우리 애들을 돌려줘” 분노의 목소리가 터졌다


노란 부표 가까워오자 배안 술렁
유족들 서로 부둥켜안고 기도…


“다윤아! 기다려, 꼭 꺼내줄게”
언니의 다짐에 함께 오열·탄식
슬픔에 바다 뛰어들려는 이까지… 


‘선체인양 촉구’ 삭발한 어머니
“비겁한 사람들 꼭 혼내주겠다”


배 안의 유족 가운데는 박씨처럼 삭발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선체 인양을 촉구하며 함께 삭발했다. 2학년 3반 김시연양의 어머니 윤경희(39)씨도 난생처음 머리카락을 잘랐다. 윤씨는 “딸을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우리 아이를 죽게 만든 비겁한 사람들을 꼭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고 말했다. 일반인 생존자도 사고 현장을 찾았다. 화물차 운전기사인 박용운(62)씨는 “아이들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이들을 놔두고 살아남아 늘 미안하다”며 말끝을 흐렸다.

40분 남짓 세월호 침몰 장소에 머물렀던 배는 노란 부표를 한바퀴 돈 뒤 팽목항으로 회항했다. 유가족들은 사고 현장을 떠나는 순간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절규했다.

“사랑한다. 다윤아! 기다려, 꼭 꺼내줄게!”

실종자인 허다윤양의 언니 서연(20)씨와 이모 부부가 한쪽에서 흐느꼈다. 다른 유가족들도 발을 동동 굴렀다. 단원고생 최종수군의 아버지 최태식씨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 집에 가면 또다시 고통이 시작될 것”이라며 울먹였다. 한 유족은 바다로 뛰어들려다 주위의 만류로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하기도 했다.

팽목항으로 돌아가는 동안 배 안엔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설움에 북받친 유가족들은 배 주변의 해경 경비함을 향해 날선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구경만 하고 싶었냐. 나쁜 놈들아. 천벌을 받을 거야”라며 사고 당시 정부의 무능한 대처를 비판했다.

유가족 일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퍼지는 막말에 서운함을 내비쳤다. 유가족 이은숙씨는 “누가 ‘자식 팔아 돈을 챙기려 한다’고 말해 크게 싸운 적이 있다. 슬퍼해달라고는 안 할 테니 제발 잊지라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경근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선체 인양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더라도 실종자들을 반드시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겠다. 1주기는 이런 다짐을 실천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경기 안산을 출발한 유가족들은 오전과 오후 두차례 사고 현장을 찾았다. 유가족 등 500여명은 오후 2시 팽목항에서 위령제를 열어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고 희생자의 영면을 기원했다.

진도/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한겨레 다큐] 거리의 유가족, 세월호 두번째 침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