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ressEngine ver.2

글 수 1,141
  등록 :2015-06-14 20:31
이명박 정부 출범 후 6·15 행사가 이전에 비해 초라하게 치러지더니 올해 6·15 15주년도 그저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명박 대통령처럼 말로는 6·15 선언을 존중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정책 면에서는 6·15에 대해서 비우호적이었다. 이건 두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의 6·15에 대한 오해와 편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이 발표된 후 시작된 우리 내부 6·15 찬반논쟁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선언 5개항 중 이산가족 관련,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 관련, 당국회담 관련 3개항은 별로 시비 대상이 아니지만 1항과 2항은 처음부터 논란의 초점이었다.

제1항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라는 대목이 북한의 술수에 말려 반미용공 통일을 합의한 것이라는 오해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그러면 남북의 정상들이 만나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치자고 해야지 외국의 힘을 빌려서 통일하자고 할 수 있는가?”라는 반문부터 제기할 수 있다. 그리고 반미통일은 우리의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비현실적인 것이다. 용공통일을 막는 건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광복 70년이 돼서도 대북 피해의식을 가지고 북한을 상대하면 통일은 요원하다. 지금은 우리가 자신감을 가지고 북한을 리드해나가야 할 때다.

제2항의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공통점이 있다고 보고…”라는 대목도 오해의 대상이다. 북한이 주장해온 연방제를 결국 수용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대학에서 정부형태론을 강의하는 교수들은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내용상 국가연합(confederation)이다. 그건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의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남북연합’과 같은 개념이다. 북한이 그동안 주장했던 연방제(federation)는, 굳이 단계로 말한다면, ‘높은 단계의 연방제’다”라고 가르칠 것이다. 그렇다면 6·15의 1항, 2항은 독소조항도 아니고 북한에 당한 것도 아니다.

6·15가 진보 정치인의 작품이기 때문에 싫다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적 편견으로 6·15를 배척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분명히 밝힐 것이 있다. 1994년 7월 김영삼-김일성 평양 정상회담이 원래 계획대로 진행됐더라면 6·15와 비슷한 선언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필자는 대통령 통일비서관이었다. 그래서 7월25~27일 평양 남북정상회담 준비 실무책임자로서 김영삼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과 나눌 대화 내용, 정상 간 합의해야 할 사안 관련 자료들을 준비했다. 그런데 7월9일 정오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 사망 보도가 나왔고, 분단 사상 최초가 될 뻔했던 남북정상회담은 불발로 끝났다. 만약 그때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진행됐더라면 어찌 됐을까? 당연히 ‘7·27 공동선언’이 나왔을 것이다.

분단국가의 정상들이, 안 만났으면 몰라도, 만난 이상 분단상황 관리 차원에서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에 대해 협의하지 않고 무슨 다른 일을 하겠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당시 우리의 회담전략이다. 절대적 우위에 있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경제지원을 해나가면서 그걸 레버리지로 군사긴장을 완화시킨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7·27 공동선언’도, 불발돼서 그렇지, 결국은 ‘6·15 공동선언’과 크게 다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노무현-김정일 회담 결과인 10·4 선언이 6·15의 증보판인 것도 마찬가지다. 왜? 진보-보수를 떠나 김영삼 대통령도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모두 분단관리의 일차적 책임이 있는 남한 대통령이니까.

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해서 누가 남북정상회담을 하더라도 7·27-6·15-10·4와 전혀 다른 방향의 공동선언은 만들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남북관계가 꽉 막혀 있는 이 시점에 6·15 공동선언의 의미를 중립적으로 차분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일은 보수 정치인들에게 더 필요하다. 남북관계를 앞으로도 계속 지금처럼 끌고 갈 수만은 없는 일 아닌가?
 

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번호
제목
글쓴이
141 법원 "정부, 양산보도연맹 희생자 유족에 손해 배상하라"
[관리자]
2016-02-02 5493
140 새책! 『정동의 힘』(이토 마모루 지음, 김미정 옮김) ― 미디어와 공진(共振)하는 신체
도서출판 갈무리
2016-02-05 9222
139 어리석고도 위험하다 / 서재정
[관리자]
2016-02-17 5128
138 임동원·백낙청 “야당, 대북강경책 방관·합리화”
[관리자]
2016-02-21 5306
137 [정세현 칼럼] 개성공단 폐쇄로 휴전선 다시 남하
[관리자]
2016-02-22 9380
136 결딴난 균형외교…한국, 미·일동맹 ‘하위 파트너’ 전락
[관리자]
2016-02-23 5385
135 10시간 ‘필리버스터’ 은수미 의원은 누구?
[관리자]
2016-02-24 9797
134 은수미 국회의원, 장거리 레이스 구슬땀 뚝뚝
[관리자]
2016-02-24 9657
133 [배달의 한겨레] 테러방지법 반대 릴레이 필리버스터 특집
[관리자]
2016-02-25 9962
132 최민희 의원에게 누리꾼이 제시한 ‘완벽’ 필리버스터 초안
[관리자]
2016-02-25 5563
131 [이순간] 부산의 첫 소녀상, 일어서다
[관리자]
2016-02-29 5475
130 진선미 “대통령 책상 쳤다고? 나는 가슴을 치고 싶다”
[관리자]
2016-02-29 9477
129 필리버스터 결정적 순간 TOP 10
[관리자]
2016-03-03 9460
128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 50주년 위령제, 한국인 사죄의 첫걸음
[관리자]
2016-03-06 6026
127 "아버지 뼛조각 하나라도 찾을 수 있다면…"
[관리자]
2016-03-08 10237
126 연세대 교수, 막말 "개념 있었다면 세월호 탈출했을 것"
[관리자]
2016-03-08 5295
125 다중지성의 정원 2016년 2분학기가 4월 4일 개강합니다~!
다중지성의 정원
2016-03-10 36460
124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 이낙연 지사에게 감사패
[관리자]
2016-03-10 9911
123 ‘북-미 평화협정 논의’ 단상
[관리자]
2016-03-11 9968
122 4월 7일 개강! 자본주의의 전환(조명래), 마르크스 강의(오준호), P2P와 COMMONS(최용관), 노동:질문하며 함께 걷기(장훈교)
다중지성의 정원
2016-03-15 36251

자유게시판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