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1.20 20:50수정 : 2015.01.21 10:21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 긴급조치9호피해자모임 등 7개 과거사단체 회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과거사위원회에서 활동했던 변호사 7명이 검찰의 표적수사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수사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과거사위 출신 변호사 수사
일부 변호사, 10% 이상 수임료도 논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일부 변호사들의 ‘과거사’ 진상규명 활동 뒤 관련 사건 수임 행위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가운데 이를 둘러싼 논란도 분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당사자와 민변, 일부 관련 단체는 각종 위원회에서 수행했던 과거사 청산 작업의 연장선에서 사건을 수임한 것일 뿐이라며 검찰 수사를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민변 내부에서도 자신들이 심의·결정 과정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사건을 수임한 행위는 부적절한 만큼 스스로 수습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전쟁유족회 등 7개 과거사단체 회원 20여명은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이 이들 변호사를 수사하겠다는 것은 피해자들이 최소한 법적 조력을 받을 권리를 빼앗는 것이며, 힘겹게 쌓아올린 과거청산의 성과도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며 검찰 수사를 규탄했다. 박용현 한국전쟁유족회 운영위원장은 “2000년대 초반 풍찬노숙하며 위원회를 만들 당시 민변 변호사들이 도와줬다. 위원회 활동 뒤 후속조치가 없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려는데 초기엔 다른 변호사들이 거절해 결국 민변 변호사들이 맡아줬다”고 말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과거사 청산을 위해 의문사위·진실화해위 등을 출범시켰지만, 피해자 명예회복이나 피해보상 등 후속 조치 없이 활동이 종료됐다. 결국 피해자들은 개별적으로 재심을 청구해 무죄를 받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국가 상대 소송을 진행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유족들의 처지는 물론 사건 내용도 잘 아는 민변 변호사들이 자연스럽게 맡게 됐다는 주장이다.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은 이명춘·김준곤 변호사도 같은 취지로 항변한다. 이명춘 변호사(전 진실화해위 인권침해국장)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재심에서 무죄를 받는 형사소송은 인권적 차원에서 수임한 것이어서 문제가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문제가 되는 민사소송 두 건도 다른 변호사들한테 갔다가 안 돼서 나한테 넘어왔던 것인데 난감해하다 결국 맡게 됐다”고 했다. 의문사위·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을 지낸 김준곤 변호사도 “변호사나 국가 시스템에 대한 유가족들의 불신이 심했다. 믿을 곳은 민변뿐이라며 부탁해왔다. 특히 소송이 늘어지는 상황에서 과거사 청산 후속 처리가 너무 오래 끌어서 오히려 문제가 아닌가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과 함께 과거사 관련 위원회에서 활동했던 변호사들조차 일부 사건 수임은 문제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과거사위 비상임위원을 지낸 ㄱ변호사는 “위원회에서 나온 뒤 과거사 관련 소송이 한 건 들어왔는데, 시기를 따져보니 내가 취급한 사건이 아니어서 맡았다. 위원회의 심의·결정 과정에 참여했다가 해당 사건을 맡는 건 변호사법 위반이 맞다”고 말했다. 과거사 관련 위원회 상임위원 출신인 ㄴ변호사도 “나중에 문제될 것을 우려해 위원회 활동 뒤 과거사 사건은 하나도 맡지 않고, 상담 요청도 거절했다”고 했다.


사건을 보는 또다른 관건은 수임료의 규모다. 인혁당재건위 사건 등 주요 과거사 사건에서 민변 소속 변호사들의 수임료는 배상금의 5% 이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수임료의 일부를 과거사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공익기금으로 쓰기로 약정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10% 이상 수임료를 받아간 과거사 사건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 보상금이 수십억원이면 변호사 수임료는 수억원대가 되는데, 일반 시민들로서는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민변의 한 중견 변호사는 “일반인들은 ‘그렇지 않아도 돈 많이 버는 변호사가 이젠 나랏돈까지 가져가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정도 수임료가) 사람들한테 공감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수사 대상에 오른 변호사마다 위원회 때 조사에 관여한 정도가 다르고, 수임료도 달라 일률적으로 재단해서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있다. 일방적인 옹호나 비판이 적절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민변 내부에선 상황이나 여론이 나빠지기 전에 스스로 수습책을 내놓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민변의 중견 변호사는 “(문제가 되는 당사자들도) 수임할 당시 변호사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생각은 못했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유감이다. 수임료는 공익적인 목적에 내놓겠다’고 하면 논란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사진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