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5-04-05 16:11수정 :2015-04-05 22:27


부활절 맞아 화해 강조
“노동자는 경영자의 종이 아니며
경영자는 척결해야 할 적이 아니다”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가 5일 부활절을 맞아 모든 종류의 적의와 대결의 갑옷을 벗어야 한다며 우리 사회의 통합과 화해를 역설했다.

강 주교는 이날 교구장 사목서한을 통해 “지금 당신은 자신이 ‘보수’에 가깝다고 생각하느냐? 자신과는 달리 ‘진보’에 가까운 사람들도 동등한 권리를 가진 국민이고 하느님이 사랑하는 자녀임을 기억하라. 지금 자신이 ‘진보’에 가깝다고 생각하느냐? ‘보수’ 쪽에 가까운 사람들도 같은 민족이고, 하느님은 그들을 위해 해를 비추어 주시고 비를 내려주고 계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강 주교는 “죽음의 문화를 치우고 생명의 잔치를 벌이려면, 예수님과 함께 모든 종류의 적의와 대결의 갑옷을 벗어버려야 한다”며 화해와 상생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우리 사회의 무한 경쟁 구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강 주교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며 갈수록 젊은이들과 노인들의 자살이 이어지고 있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얻지 못해 삶을 포기하고, 노인은 노년을 안심하고 살아낼 방안이 안 보이고 함께해줄 동반자도 안 보여 삶을 포기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강 주교는 “젊은이를 일자리에서 몰아내고 노인을 외톨이로 몰아내는 것은 끊임없는 경쟁을 통한 탈락과 선발의 사회구조다.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만 선발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탈락시키는 무한 경쟁의 사회구조다. 이런 사회구조는 갈수록 죽음의 문화를 키워갈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강 주교는 노사의 동반자 관계를 강조하기도 했다. 강 주교는 “평생 피땀 흘려 모은 재산으로 회사를 일구셨느냐? 어떠한 기업도 수많은 노동자의 피와 땀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고, 노동은 자본에 우선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기억하기 바란다. 노동자는 경영자가 마음대로 부리는 종이 아니라 경영의 동반자다. 당신은 박봉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노동자인가? 노동의 대가는 금전만이 아니라 이마에 땀 흘려 일할 수 있는 그 자체가 소중한 하느님의 선물이다. 경영자는 척결해야 할 노동자의 적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동반자다”라고 말했다.

강 주교의 사목서한에 대해 천주교 제주교구 관계자는 “청년 일자리와 노인 문제, 노동자와 경영자의 분열과 대립을 놔두고서는 사회발전과 통합을 이룰 수 없고, 진보와 보수도 대결의 벽에서 벗어나야 통합의 길로 나갈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또 직접 제주4·3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유족회와 제주경우회가 화해하듯이 최근의 이념 대립을 넘어 화해와 상생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