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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3 04:56:08 (*.70.29.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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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2015-07-10 18:29
그 질문은 1932년에서 시작하는 게 마땅하다. 그날 상하이 훙커우공원 들머리까지 윤봉길과 동행한 건 양장 말쑥히 차려입은 이화림이었다. 애초에 둘은 가시버시인 양 행동하기로 했다가 김구의 만류를 받아들여 단독거사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화림은 이봉창이 일본으로 건너갈 때 수류탄 2개를 숨긴 훈도시를 만들어준 한인애국단 핵심 활동가였다. 95살에 세상을 떠난 그는 80대에도 이봉창이 폭탄 은닉처로 사타구니 사이를 가리켰다는 말을 하면서 낯을 붉히던 여인이다.

이봉창이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폭탄을 던진 건 그해 1월8일이었다. 일본군이 상하이를 쳐들어온 건 1월28일이었다. 아나키스트들을 이끌고 활동하던 이회영이 상하이에서 배편으로 만주로 들어가려고 하던 중 옥사한 것도 같은 해 가을 뤼순이었다. 한 해 전 관동군이 만주를 전면적으로 침략해온 상황이었다.

4월29일 비가 내리는 오전 11시10분께 윤봉길은 행사장 단상을 향해 물통형 폭탄을 던졌다. 공원 밖에서 한 청년이 그 폭발 소리를 들었다. 그의 심장은 화약 터지듯 작렬했다. 폭탄을 품고 기다리고 있던 백정기였다. 두 사람은 살아서 조우한 적이 없었다. 김구와 이회영네는 약속이나 한 듯 4월29일을 서로 다른 데서 도모해 훙커우로 접근해왔던 것이다. 4·29라는 이 치열한 필연은 어차피 와야 할 운명이었다. 윤봉길과 백정기가 처음 만난 곳은 해방 후 효창공원 무덤이었다.

이와 닮은 명장면은 1908년에 벌써 있었다. 을사늑약이 정당한 것이라고 변설하고 다니던 미국인 스티븐스를 향해 샌프란시스코 포구에서 방아쇠를 당긴 건 전명운이었다. 총알은 발사되지 않았고 둘이 엉겨붙는 격투가 벌어졌을 때 옆에 있던 장인환이 권총을 쏘았다. 그 총에 전명운은 1발 맞았지만 살았고 스티븐스는 절명했다. 두 청년 또한 그 총구 앞에서 맞닥뜨린 생면부지 초면이었다. 하나의 상황에 동시에 영웅적 행동으로 등장하는 다른 역사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두 명장면이다.

윤봉길이 처형된 것은 그해 12월19일 오전ㅤ7시27분이었다. 훙커우공원에서 폭탄 파편에 쓰러진 상하이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는 12번 수술 뒤 5월26일 오전 7시25분께 사망했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에서 3번째 총살형으로 윤봉길 목숨을 거둬간 시간은 시라카와의 죽음에 맞춘 정교한 복수였다. 윤봉길은 적어도 총알 3발 이상을 머리 부분에 맞았고 1발은 이마에서 눈까지 넓게 가린 하치마키(머리띠)식 가리개 한가운데를 명중시켰다. 피가 흘러나와 흰 천에 붉은 점 하나가 돋아났다. 일장기였다. 훗날 시라카와 요시노리라고 창씨개명한 한국인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백선엽이다.

거기서 윤봉길이 다 죽은 것은 아니었다. 1945년 9월2일 오전 9시4분 도쿄만에 정박해 있는 미해군 기함 미주리호 갑판으로 지팡이를 짚고 올라온 연미복 차림 사내가 항복문서에 서명함으로써 전쟁은 종결되었다. 이 일본 외상 시게미쓰 마모루가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건 주중공사 시절 윤봉길의 폭탄에 맞은 터였다. 한국이 빠진 13개 나라가 서명한 일제 항복 현장에 윤봉길이 지팡이로 동행했던 것이다. 이를 죽은 윤봉길의 서명이라고 해두고자 한다. 그 시게미쓰 혈족과 혼인(1952)한 뒤 시게미쓰 다케오라는 일본 이름을 갖게 된 한국인이 대기업 창립 총수 신격호다.

서해성 소설가
서해성 소설가

질문은 간명하다. 간도특설대니 어쩌고 읊조리고자 하지 않는다. 아흔 넘어서도 활발하게 살아가고 있는 두 이름에게 가슴으로 말하고자 한다. 왜 하필 시라카와이고 시게미쓰여야 했는가. 70번째 광복절이 다가오고 있는 길목에서 윤봉길의 이름으로 묻는다.

서해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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