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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이번엔 백낙청에 “깡통 빨갱이”

 

등록 : 2012.12.04 10:16수정 : 2012.12.04 15:52

김지하 시인

조선일보 통해 ‘한류 르네상스 막는 쑥부쟁이’ 폄하
리영희 선생에게도 ‘깡통’ ‘사기’ 단어 써가며 맹비난
작가회의 “김지하 어쩌다 이렇게…편견에 가득찬 글”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지지를 밝힌 김지하 시인이 이번엔 <조선일보> 기고를 통해 문학 평론가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노골적으로 비난해 파문이 일고 있다.

김 시인은 4일 얼굴 사진과 함께 실은 <조선일보> 특별기고 ‘한류-르네상스 가로막는 ‘쑥부쟁이’를 통해 “못된 쑥부쟁이가 한류-르네상스의 분출을 가로막고 있다, 잘라 말한다. 자칭 한국 문화계의 원로라는 ‘백낙청’이 바로 그 쑥부쟁이다”라고 쓰고, 그 근거로 열가지를 나열했다.

김 시인은 백 교수가 한국문학 전통에 전혀 무식하며 “그저 그런 시기에 ‘창비’라는 잡지를 장악해 전통적인 민족문학 발표를 독점했을 뿐”이라고 그 첫머리를 시작했다.

김 시인은 백 교수가 “긴 세월을 내내 마치 한국 문화사의 심판관인 듯 행세해왔고 그 밑천을 겨우 ‘하버드대에서 영문학’, 소설가 몇사람 공부한 것으로 내세워왔다”며 백 교수의 평론 행위는 평론으로 말하기 힘들고 공연한 ‘시비’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김 시인은 백 교수가 사상적 스승으로 일컫는 리영희씨에 대해서도 ‘깡통 저널리스트’에 불과하다며 백 교수를 향해 “내가 ‘깡통 빨갱이’라고 매도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알라”고 노골적 비난을 퍼부었다.

김 시인은 백 교수가 창간한 문학비평 계간지 <창작과 비평>에 여러 차례 작품을 발표하고, 1982년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를 비롯해 <유목과 은둔> <절, 그 언저리> <대설 남 1,2,3> 등을 출판사 창작과비평사를 통해 발간해왔다.

김지하 시인의 <조선일보> 기고에 대해 이시영 한국작가회의(작가회의) 이사장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논리와 사실이 결여된 것으로 특정인에 대한 편견과 모욕으로 가득 차 있다”면서 “시인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로서는 대응할 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1991년 김지하 시인이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 때문에 작가회의에서 한 차례 제명되었다가 화해한 바 있으며, 얼마 전 그가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을 때 반박 성명을 준비했지만 논의 끝에 그만둔 바 있다”면서 “일부 회원들 중에는 이참에 다시 제명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러면 오히려 일을 키우고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 것 같다. 당사자인 백낙청 선생도 그러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치 <한겨레>에는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김지하의 변신 혹은 변절’ 칼럼이 실렸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에 실린 두 칼럼을 아래에 소개한다.  

최재봉 구본권 기자 bong@hani.co.kr

[조선일보 특별기고] 한류-르네상스 가로막는 ‘쑥부쟁이’/ 김지하 시인

원주의 부론·문막 옆 손곡에 있는, 고려 이전부터 유명한 법천사(法泉寺)와 새로이 등장한 거돈사(居頓寺). 두 절 사이가 매우 가까운데도 길이 없다. 시퍼런 독초와 독거미풀만 무성하다. 법천사의 섬세·심오한 유식학인 법상종과 참선으로 일관한 거돈사의 선종(禪宗) 사이에 무엇이 가로막고 있길래? 그곳은 컴컴 칠흑 속 텅 빈 지름길 위에 못난 쑥부쟁이가 한 송이 피어 있을 뿐이다.

이 부근엔 절절한 사연을 가진 장소가 많다. 견훤이 15만 정예 병력으로 문막을 노리며 기다리던 후용. 궁예와 왕건이 수십만 대군을 부딪쳐 싸운 문막 벌판. 오대산 월정사까지 이어지는 구룡사를 비롯한 화엄 사찰들. 여성적 경제 원리의 상징인 팔여사율(八呂四律)이라는 이름의 월봉. 그 봉우리 옆에 충청도의 단강, 강원도의 섬강, 경기도의 남한강이 합수(合水)하는 ‘흥원창’.

절절한 사연을 가진 장소가 주변에 즐비하건만 법천사·거돈사 사이에는 독초·독거미풀·쑥부쟁이가 버티고 있다. 우리 문화계도 똑같다. 곳곳에 막강한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건만 독초·독거미풀에 이어 머얼건 쑥부쟁이같이 누군가 길목을 막고 버티고 있다.

싸이의 말춤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오바마가 참석하는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다. 욘사마에 이어 한류의 붐이 와 있다. 한류-르네상스의 핵은 ‘시와 문학의 참다운 모심’이다. 그런데 이 못된 쑥부쟁이가 한류-르네상스의 분출을 가로막고 있다. 잘라 말한다. 자칭 한국 문화계의 원로라는 ‘백낙청’이 바로 그 쑥부쟁이다. 왜?

첫째, 백낙청은 한국 문학의 전통에 전혀 무식하다. 그저 그런 시기에 ‘창비’라는 잡지를 장악해 전통적인 민족문학 발표를 독점했을 뿐이다.

둘째, 백낙청은 한류-르네상스의 핵심인 ‘시’의 ‘모심’에서 가장 중요한 리듬, 즉 시 낭송의 기본조차 전혀 모른 채 북한 깡통들의 ‘신파조’를 제일로 떠받들고 있다. 우리 시 문학의 낭송에는 적어도 아홉 가지의 당당한 방법이 있는데도 여기에 대해선 전혀 무식하다.

셋째, 수십년 동안 창비출판사에서 단 한 번도 지나간 한국 시문학사의 미학적 탐색을 시도한 적이 없다. 무식 때문이다.

넷째, 그는 그 긴 세월을 내내 마치 한국 문화사의 심판관인 듯 행세해왔고 그 밑천을 겨우 ‘하버드대에서 영문학’, 소설가 몇 사람 공부한 것으로 내세워 왔다.

다섯째, 그의 사상적 스승이라는 ‘리영희’는 과연 사상가인가? 깡통 저널리스트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리영희를 앞세워 좌파 신문에서 얄팍한 담론으로 사기행각을 일삼는다.

여섯째, 그의 평론 행위는 평론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그것은 공연한 ‘시비’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박경리씨의 소설 ‘시장과 전장’에 관한 평이다. 그것도 문학 평에 속하는가? 너절하고 더러운 방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것을 발표하고도 ‘심미 의식’인가?

일곱째, 그 깡통 같은 시국담이다. 무슨 까닭인지 그의 입은 계속 벌려져 있는 상태다. 그렇게 벌린 입으로 과연 지하실 고문은 견뎌냈을까? 그런데 하나 묻자. 백낙청은 지하실에 가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여덟째, 계속되는 졸작 시국담에 이어 ‘2013 체제’라는 설을 내놓았다. 그것도 시국 얘기인가? 아니면 막걸리에 소주를 섞어 먹은 상태인가? 그런 짓 하면 안 된다. 그러고도 ‘원로’라니?

아홉째, 백낙청은 우선 정치관부터 바로 세워라. 그런 것도 없는 자가 무슨 정치 평을 하는가? 내가 ‘깡통 빨갱이’라고 매도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알라! 마르크스는 읽었는가? ‘자본론’은 읽었는가? ‘경제학·철학본고’는? ‘도이치 이데올로기’는?

열째, 마지막으로 묻자. 문학을 해서 날조하려는 것이냐? 본디 ‘시 쓰기’는 고통의 산물이다. 사람은 사회에서 ‘원로’ 대접을 받기 전에 먼저 삶의 ‘원로’가 되어야 하는 법이다.

이제 이 민족은 지난 시절을 훌쩍 벗어던지고 있다. 이번 선거의 개 똥구멍 같은 온갖 개수작들이 역설적으로, 과거가 끝났다는 증거이다. 문학자는 참된 마음으로 문예를 부흥시켜 이 나라를 ‘문화대국’으로 키워가야 한다. 이게 바로 15세기 피렌체 르네상스에서 배워야 하는 테마다.

각오가 돼 있는가? 스스로를 욕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것이다. 손곡 쑥부쟁이가 스스로 사라지는 날을 기다리는 사람은 뜻밖에도 많다. 알았는가?


[한겨레 세상읽기] 김지하의 변신 혹은 변절 /김동춘

김지하 시인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 세대의 영웅이고 나의 영웅이었다. 그의 감동적이고 해학적인 시와 글이 있었기에 20대의 우리는 지하 골방에 앉아서 마음껏 박정희 체제를 비웃을 수 있었고, 민주화 투쟁의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다. 그의 생명사상과 후천개벽 사상이 당시로서는 좀 뜨악하기는 했으나 지나고 보니 나름대로 혜안이 있었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991년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을 때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때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보편적 담론을 펼쳤지만, 그것을 91년이라는 신공안정국의 국면에, 그것도 <조선일보> 지면에 실어서 보수에 큰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의 변신 혹은 전향은 시작된 것 같다. “인간은 후를 보아야 한다”고 하니 아직 인생 후반부가 남은 나도 큰소리는 못 치겠지만, 그의 변신은 좀 이해하기 어렵다.

‘지식인은 자신을 알아보는 주군이나 군주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옛말이 있듯이, 그는 자신을 버린 옛 운동진영을 비판해왔고, 자신을 찾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준 보수세력의 품에 안겼다. 보수세력이 돈과 권력과 위세와 여유, 모든 것을 쥐고 있는 한국 땅에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똑똑한 지식인의 변신은 87년 이후 지금의 뉴라이트에 이르기까지 계속 있어왔고, 그의 변신도 그 흐름 속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페이스북에 그의 행동을 ‘전향’이라고 했더니 어떤 페친(페이스북 친구)은 “지식인이라면 적어도 사상적 ‘전향’을 해야 하는데… 변절이라는 생각만 듭니다”라고 댓글을 달았고, 다른 친구는 “썩은 군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만 머리를 조아리는 법… 공자는 이를 ‘소인배’라 했죠”라고 일갈했다.

그렇다. 늙고 외로워지면 사람은 보수화된다. 특히 어려웠던 시절의 동료들이 자신을 따돌린 채 자기들끼리만 한자리씩 해먹으면, 명성도 잃고 지위도 갖지 못한 지식인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변절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이 힘들다고, 자신이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모든 사람이, 모든 노인들이 과거의 적에게 안기지는 않는다. “지초와 난초는 매우 깊은 수풀에서 자라지만, 사람이 없더라도 자신의 향을 풍긴다. 군자가 도를 닦고 덕을 세우는데 곤궁하다고 해서 절개를 꺾어서는 안 된다”(芝蘭生於深林 不以無人而不芳 君子修道入德 不以困窮而改節)는 공자의 말씀이 기억난다. 남이 알아주지 않고 경제적으로 곤궁하다고 변절하는 것은 글 읽는 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과 청년기의 기본 교육과 인격도야가 중요하다는 경고로 들린다.

70~80년대는 참으로 험악한 시대였고, 90년대 이후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소수의 잘나가는 운동권 출신 외에 대다수 과거 운동세력은 여전히 힘겹게 살아간다. 김지하를 고문했던 세력은 과거의 운동권 명사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여유와 아량을 과시하지만, 여전히 날을 세워야 하는 운동세력은 민주화 이후 지난 20여년 동안 자기편의 약간의 차이를 참지 못하고 거친 공격을 해댔고, 결국 상처를 안은 수많은 동료를 적의 품으로 쫓아냈다.

가버린 그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비난만큼이나, 그가 죽도록 고생하고 출옥했을 때 그를 따뜻하게 품어주지 못한 운동세력의 좁은 품이 한탄스럽다. 그리고 늙어서도 존경받을 수 있는 인물 한 사람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우리의 척박한 정치현실을 한탄한다. 민주화운동의 정신적·사상적 기반이 이렇게 취약했던가 되돌아보게 된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