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추가조사를 염두에 두면서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했던 모든 사건들을 다시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나주부대사건을 다시 보면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점이 있어 이렇게 생각을 몇 자 적게 되었습니다. 

 

나주경찰부대 사건은 후퇴하던 나주경찰서 소속 경찰이 1950년 7월 25일경 변복을 하고 인민군 행세를 하면서 "환영대회"를 개최한 후 여기에 참석한 주민들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영화의 소재로도 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국군도 인민군 행세를 하면서 학살을 저지른 사례가 많아 별도로 정리해 볼 생각입니다만, 이 나주부대의 기만행위는 그 자체로도 야비하지만 특히 두가지 측면에서 아주 야비하고 잔혹한 짓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는 국민보도연맹사건과 연결해 보는 경우 드러납니다.

해남에서는 1950년 7월 16일(갈매기섬 사건)과 7월 22일(화산면 해창리) 국민보도연맹 사건이 발생하며, 완도에서는 1950년 7월 17일(목포 인근 바다)과 1950년 7월 23일(완도 바다) 국민보도연맹사건이 발생합니다. 이후 해남경찰은 1950년 7월 23일 부산방면으로 후퇴했으며 완도경찰은 7월 24일 금일읍 소랑도로 후퇴했습니다. 이어 다음 날 나주경찰부대가 들어와 인민군 행세를 합니다.

당시 주민들이나 유족들의 마음 상태가 어땠을까요? 이와 비슷하면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례는 소위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의 경우일 것입니다.

이들의 처참한 심정을 이용해 다시 학살을 자행한 것이 나주부대 사건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악마적(evil)"이라고 부르더군요.

 

둘째는 해남경찰이나 완도경찰이 후퇴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의심에서 볼 경우 드러납니다.

당시 해남과 완도경찰이 후퇴한 사실을 몰랐다면 인민군으로 위장한 나주부대 경찰과 해남 완도경찰 간의 교전이 벌어졌을 겁니다. 이 정도의 정보는 전남도경 차원에서 충분히 알았을 것이라고 한다면 더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다름 아닌 "의도성"의 문제입니다. 후퇴하느라 정신없는 상황에서 우연히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결국 상당히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사건을 재구성하자면, 이렇습니다.

수백명의 국민보도연맹원 희생사실을 알고 있던 나주경찰부대가 경찰신분을 숨긴 채 해남에 들어와 인민군 행세를 하며 ‘인민군 환영대회’를 개최하였고, 후퇴하던 경찰에게 전날까지 가족들을 학살당한 유족들과 주민들이 반신반의하면서 이 행사에 소집되었습니다. 주민들 소집이 끝나자 변복한 경찰들이 신분을 밝히며 학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짓을 자기 나라 민간인에게는 커녕 적국 민간인에게도 해서는 안될 일이고, 이런 상상을 하는 것조차 범죄라고 할 것입니다.

이 사건은 세계 곳곳의 제노사이드가 갖고 있는 일반적인 악마성을 넘어서는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