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1.27 15:04수정 : 2015.01.27 15:06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지난 4월16일 저녁 조명탄이 떠올라 침몰해가는 선체를 밝히고 있다. 진도/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겨레21]

한국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국보도사진전 대상작 유감,
창원시장이 의회서 달걀을 맞는 사진이 꼽혀


여기 두 장의 사진이 있다. 한 장은 다큐멘터리 사진가 존 스탠마이어의 사진이다. 아프리카의 작은 도시 지부티로 넘어온 소말리아 이민자들이 고향의 가족과 통화하기 위해 국경지대에서 자국의 싼 전파 신호를 찾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곧 유럽으로 불법 이민을 감행해야 할 운명이다. 우리에게 조선족이나 동남아시아인과의 국제결혼 등이 남의 일만은 아닌 것처럼, 유럽과 미국도 불법 이민 등으로 이민 문제를 앓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애초 모든 문명은 빙하시대를 탈출하기 위한 이민에서 출발한다. 이 달빛 속 휴대전화 사진 또한 인류 이동의 궤적을 찾아가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10년짜리 장기 취재 과정 중에 사진가가 우연히 마주친 장면이다.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원시인류가 걷던 그 길 위에서 이제 우리는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는 가난한 이민자들을 만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한 시대를 기록하는 사진의 무게

존 스탠마이어는 지난해 이 사진으로 세계보도사진상 대상을 받았다. 퓰리처상이 미국 언론에 보도된 사진만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세계보도사진상은 아마추어가 아닌 전업 사진가의 작업이라면 뭐든 응모할 수 있다. 일간지인지 월간지인지 인터넷 매체인지도 상관없고, 프리랜서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매체의 위기라는 아우성 속에서도 응모작 수는 해마다 늘어 130여 개국 5700명 정도의 사진가들이 평균 10만 장 이상의 사진을 제출한다. 이런 역설적 상황에 매체가 아니라 상을 통해 작업을 소개해야 한다는 자조 섞인 말들도 나온다. 하지만 세계보도사진상이 사진을 통해 한 시대를 기록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베트남전쟁 때 미군의 네이팜탄 오폭으로 화상 입은 소녀가 절규하며 마을을 뛰어나오는 사진이나, 베트콩의 즉결 총살 장면, 중국 톈안먼 사태 때 거대한 탱크 앞을 막아선 흰 셔츠의 청년 등 세계사의 아이콘이 된 사진들 상당수는 세계보도사진상 수상작이다. 그만큼 수상작을 둘러싼 논쟁도 뜨거워, 지난해 대상 수상작의 경우 지나치게 서정적인 사진, 설명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진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진이 담고 있는 메시지의 무게감, 애써 휴머니즘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호기심을 유발하는 구도와 색감 등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2014년 세계보도사진상 대상 수상작(위)와 제51회 한국보도사진전 대상 수상작. 사진 John Stanmeyer for National Geographic, 한국사진기자협회 제공


여기 또 하나의 사진이 있다. 올해 한국보도사진전 대상 수상작이다. 이 상은 한국사진기자협회가 주관한다. 한국사진기자협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성찰하게 하고 포토저널리즘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케 한다는 점에서 세계보도사진상 재단과 견줄 만하다. 세계보도사진상 또한 시작은 1955년 네덜란드 사진기자협회를 통해서였다. 한국보도사진전도 51회째로 역사가 짧지 않다. 궁금증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과연 지난 한 해 우리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 달걀을 맞고 있는 경남 창원시장의 사진일까. 게다가 달걀을 맞고 있는 이유가 지역 야구장의 건설 위치 논란 때문이었는데, 어느 정도의 기사 가치를 가지는가. 물론 사진상인 만큼 뉴스 가치 못지않게 사진의 완성도 부분이 심사의 중요한 기준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일어난 상황을 담은 이 사진은 사진기자가 구도에 개입하지 못한, 증거로서의 사진에 가깝다. 사진 속의 달걀 노른자는 과연 어디쯤에 떨어질 것인가라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호기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 많던 세월호 관련 사진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의문도 일으킨다.


열린 사진이 나올 수 없는 폐쇄적 협회

현재 한국사진기자협회는 전국 신문사와 통신사 사진부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인터넷 매체는 신문사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가입조차 못하다가 현재 4개 매체만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대신 자회사 형태로 분사한 조선일보 사진부는 회원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런 배타적인 구조 속에서 프리랜서 사진기자는 아무리 좋은 사진을 가지고 있어도 응모 자체를 할 수 없다.

사실 한국사진기자협회의 폐쇄성은 국내 언론사가 지닌 포토저널리즘에 대한 폭 좁은 태도가 만들어내는 측면이 있다. 대부분의 일간지가 자사 신문기자의 사진만을 고집하는 현실에서 프리랜서 사진기자는 거의 씨가 마른 상태다. 자사의 이기주의에 갇혀 있는 한, 우리가 <내셔널지오그래픽>과 10년짜리 취재를 감행할 수 있는 존 스탠마이어 같은 프리랜서 사진가를 만들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일간지 내에서 신문기자의 위상이 높은 것도 아니다. 전문적으로 사진을 고를 수 있는 사진편집자가 한국 언론에는 존재해본 적이 없다. 반면 20여 명의 사진에디터를 둔 <뉴욕타임스>는 별도의 1면 담당 사진편집팀이 톱사진을 위해 자사 혹은 프리랜서 사진기자에게 최소 2박3일의 취재를 부탁한다. 이렇게 해서 지면에 못다 소개한 사진들은 ‘렌즈’라는 인터넷 사진 블로그를 통해 공유한다. 아마 국내 대부분의 사진기자들은 심층취재를 꿈꾸기는커녕 하루 최소 3곳은 돌아다녀야 할 형편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달걀을 던지고 머리채를 잡으며 단상에서 공중부양하는 정치권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사진에만 길들여진다. 언론이 감시카메라가 아닌 이상,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사건의 증거로서가 아니라 사건의 해석으로서 사진이다.


증거가 아닌 해석으로서의 사진

종이매체의 위기를 말하는 요즘, 포토저널리즘은 사진의 힘이 강했던 <라이프> 시절 같은 황금기로의 부활은 아니더라도, 이 위기를 돌파할 중요한 가능성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도처에 사진이 넘쳐나는 이미지 홍수의 시대, 거대 매체의 파워는 약해지고 1인 매체의 출현은 잦아지는 시대에, 사진기자가 우리의 휴대전화 카메라가 미치지 못하는 곳, 한번 걸음 해서는 발견할 수 없는 장면을 찾아 떠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한국사진기자협회가 국제적 위상을 갖지는 못하더라도 데스크들이 신문 사진을 잘 모른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 않는 시대라도 왔으면 좋겠다.


송수정 전시기획자·사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