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지법 민사20부 ‘과거사 소송’ 못질

등록 : 2013.02.06 08:11

 

소멸시효 ‘진실규명뒤 6개월’ 판단
민간인학살 등 6건 잇단 원고패소
“시효 3년” 대법 판결과도 어긋나
진실위 자료 도착전 재판 끝내기도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의 한 재판부가 ‘소송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대법원 판결과도 다르게 잇따라 원고 패소 판결해 논란이 일고 있다.

5일 <한겨레>가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재판장 장진훈)가 판결한 한국전쟁 시기 보도연맹·군·경찰의 민간인 학살사건, 여순 반란사건 등 피해자 유족들의 손해배상 소송 6건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재판부는 모두 ‘소송을 낼 수 있는 시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지난해 8월 대법원은 울산보도연맹 사건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공권력의 불법행위에 대해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당시 대법원은 피해자 유족들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수 있는 기한을 소송을 낼 수 있는 객관적 장애가 사라진 시점, 즉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으로부터 3년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하급심 재판부는 대법원의 판례를 받아들여 대개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는 소멸시효를 사건이 일어난 지 5년, 또는 진실화해위 결정으로부터 6개월로 판단해 원고 패소 판결하고 있다.

재판부는 1950년 한국전쟁 중에 일어난 충남지역 보도연맹 사건 등 대부분의 판결에서 “유족들은 경찰이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피해자들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국가가 사건을 은폐하거나 책임을 부인하려고 한 점을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 전시 상황임을 고려해도 통상적인 법 절차를 통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없었다고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국전쟁 뒤 학살된 사람들이 좌익용공분자로 낙인찍힌 1950년대에, 그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어야 한다는 얘기다.

재판부는 또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진 뒤 소송을 준비하기 위해 별도로 시간이 필요했다고 볼 만한 사정을 찾기 어렵다”며 진실화해위 결정(2007~2010년)으로부터 6개월 안에 소송을 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유족들은 “70~80대의 고령인 경우가 많고 소송 비용을 마련하는 데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며 가혹한 잣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는 여순반란사건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관련 자료가 도착하기도 전에 재판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지난달 17일, 유족 대리인이 이에 반발해 재판부를 바꿔달라는 기피신청을 냈지만, 재판부는 다음날인 18일 각하 결정했다. 민사소송법에는 기피신청을 낸 날로부터 3일 이내에 이유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재판부는 이유서조차 받아보지 않은 채 각하해버렸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