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해외입양인 제인 정 트랜카의 <덧없는 환영들>

13.02.19 18:06l최종 업데이트 13.02.20 08:15l      김성수(wadans)

 

지난 2005년 한 미국입양인의 소개로 제인 정 트랜카를 처음 만났다. 그때 나는 우리나라 과거권위주의정권하에서 벌어진 민간인학살과 인권침해사건을 조사하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위)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 후 제인을 자주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내가 일하는 진실위가 설립된 배경과 조사하는 사건 종류 등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하였다. 진실위에서 주로 다루는 수많은 억울한 사건들을 설명할 때 제인의 두 눈은 빛났고 진지하게 경청했다.

그로부터 약 2년 준비기간을 거쳐 마침내 2007년 제인은 다른 해외입양인들과 함께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모임(이하 TRACK, Truth and Reconciliation for the Adoption Community of Korea)을 설립했다(http://justicespeaking.wordpress.com/).

덧없는 환영들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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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환영들>은 해외입양인 제인이 한국에 살면서 느끼고 생각한 점을 쓴 자서전적 작품인데 TRACK 홈페이지에 있는 해외입양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왜 제인이 <덧없는 환영들>을 썼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TRACK 홈페이지에는 해외입양인모임을 만든 목적이 명시되어있는데 그 첫째가 "기록을 바로잡자!"이다. 과거 국가폭력으로 발생한 민간인학살과 인권침해 사건의 다수가 기록 위조나 사건 조작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듯 우리나라 해외입양의 역사도 그렇다. 이를 테면, 친부모가 멀쩡히 살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입양을 쉽게 하려고 아이는 하루 아침에 '고아'로 둔갑한다.

적법하게 진행된 해외입양의 경우도, 입양을 촉진시키기 위해 당시에 고아호적이라는 것을 형식상 절차로 만들었다. 이미 가족호적에 등록된 아동의 경우에도 입양을 위해서 고아호적을 새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는 물론 명백한 법문서 위조행위지만 제인을 비롯한 이 땅의 수많은 아동은 법문서 위조를 기초로 해외입양 보내졌다.

아동 바꿔치기

디안 보르쉐이(Deann Borshay)가 만든 자서전 다큐멘터리 <1인칭 복수(First Person Plural)>를 보면, 본래 입양보내기로 예정되었던 아동이 갈 수 없는 사정이 생기자, 입양기관은 입양부모 몰래 다른 아동을 대신 입양 보낸다. 그리고 그 결과, 바뀐 신분으로 입양간 디안 보르쉐이는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살면서 엄청난 정체성 혼동을 겪는다.

입양부모에 대한 기록조작도 있다. 제인은 1972년 생후 6개월 만에 자신이 "미화 800달러에 내 몸이 팔려갔다"라고 이 책에서 쓰고 있다. 당시 입양기관은 제인 친모에게 미국 입양아버지의 직업이 변호사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실제 제인을 입양한 미국 아버지의 직업은 공장노동자였다. 물론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록조작이고 거짓말이다. 제인의 친모가 입양아버지의 직업이 변호사가 아니라 공장노동자라는 것을 알았어도 제인을 입양 보냈을까? 또 제인의 미국입양부모는 제인이 고아가 아니라 친부모가 한국에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어도 제인을 입양했을까? 결국 제인의 해외입양은 어른들의 거짓과 서류조작 그리고 금전거래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비극적이고 추악한 사건이다.

그래서 해외입양인들은 그 모임을 만든 첫째 목적을 "기록을 바로잡자!"라고 명시하고 있다. 제인도 <덧없는 환영들>에서 과거의 문서위조로 인해서 지금도 상처받고 고통 받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인은 자기 아픔과 비극을 단순히 개인적 책임으로만 돌리지 않는다. 그래서 박근혜 당선인에게 이렇게 묻는다.

박근혜, 사회의 가장 힘없는 이들을 위해 그간 무엇을 했던가?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박근혜 대통령…(중략)…그가 청와대에 살던 시기에 5만1563명의 한국 어린이가 해외에 입양되었고, 그중 3만3200여명이 그가 퍼스트레이디로 있던 시절에 입양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회의 가장 힘없는 이들을 위해 그간 무엇을 했던가 묻고 싶다."(227쪽)

지난 60년간 약 20만 명의 아이가 해외입양 보내졌고 그 중 약 25% 이상의 아동이 해외입양된 과정에 대해서 박근혜 당선인도 그래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작가의 준엄한 질책이다. 나 역시 박근혜 당선인이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이 과연 우리 사회의 가장 힘없는 이들을 위해 그간 무엇을 했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깊이 성찰해주기를 바란다.

TRACK 홈페이지에는 해외입양인모임을 만든 목적 중 둘째로 "정체성을 찾고, 과거를 회복하며, 한국과 화해하자"라고 명시하고 있다. 내가 제인을 비롯한 여러 해외입양인들을 만나고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또 그들이 쓴 가슴 아픈 사연을 여러 문헌으로 접하기 전까지 나는 그들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과 고통을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 해외입양인들과 이야기 하면서 점차적으로 나는 입양문제는 곧 인권문제이고 역사적 존재인 인간의 정체성 문제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내가 만난 해외입양인들 중 다수는 자기가 어떻게 다른 나라로 입양 보내지게 되었는지 그 과거(역사)를 정확하게 모른다. 그들에 관한 기록이 국가나 입양기관에 의해 감추어졌고 조작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내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가를 알고 싶어 하는 존재이고 당연히 올바르게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그래서 입양인들의 정체성 찾기, 나의 뿌리 찾기는 자연히 그들의 당연한 권리이고 우리사회구성원들은 그것을 함께 찾아주고 복원해 주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사회는 우리가 저지른 죄값을 여전히 해외입양인들에게만 지우고 방관하고 있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힘있는 자들이 아니라 힘없는 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제인은 이 책 <덧없는 환영들>에서 우리사회구성원들과 정부를 향해 이렇게 촉구한다.

"정부는 나라의 가장 어린 구성원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들의 가족을 지원하는 데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중략)…여전히 민주화가 진행 중인 이곳에서, 아직도 수많은 이들이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을 살고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곳에서, 우리가 힘있는 자들이 아니라 힘없는 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228쪽)

그렇다! 힘있는 자들은 우리가 도움을 주지 않아도 그들은 알아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우리가 관심과 도움의 손을 뻗어야 할 곳은 우리 사회의 힘없는 자들이다. 그들도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소중한 구성원들이기 때문이다.

제인이 2009년 이 책을 한국에서 쓸 때 고시원에 살고 있었다. 아픔 없이 결실 없다(no pain, no gain)라는 영국속담이 있다. 나는 제인이 그 어려움과 고통의 세월 가운데에서도 해외입양의 문제점과 자신의 아픔을 문학적 승화를 통해 기꺼이 드러내 준 용기에 감사와 갈채를 보낸다.

나는 제인이 국가폭력으로 점철된 한국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볼 수 있도록 과거에 몇 몇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제인은 내게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거짓으로 인해 짓밟히고 상처받은 해외입양인들의 만신창이가 된 참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면에서 제인은 나에게 우리사회 해외입양을 둘러싼 모순과 부조리를 볼 수 있도록 깨달음을 준 스승이다.

해외입양인모임 홈페이지에서 제인이 명시했듯이 해외입양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고, 과거를 회복하며, 한국과 화해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사회 구성원들 대부분은 아직도 해외입양인들이 겪고 있는 원초적 상처에 대해 둔감하거나 그들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겪고 있는 말 못할 고통에 대해 아예 알지 못한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아니다. 그리고 과거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과거는 끊임없이 현재와 끊을 수 없는 관련을 맺고 있다. 이제라도 제인과 해외입양인들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인 이 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그래서 그들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치유 될 수 있고, 엄마와 아이가 이땅에서 나마 이별하지 않고 함께 살수 있다면 좋겠다.

"한국이여, 난 당신들의 노래를 당신들보다 훨씬 잘 이해한다. 어째서 당신들은 과거를 뒤에 남겨 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264쪽)

"나의 간절한 바람은 언제나 똑같았다. 나는 사랑을 원한다. 난 안전하게 살고 싶다. 난 집에 가고 싶다. 어쩌다 이 단순한 바람들이 끝내 채워지지 못했던가."(258쪽)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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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덧없는 환영들> 제인 정 트렌카 지음·이일수 옮김 | 2013년 | 창비 | 284쪽 | 1만3000원

* <덧없는 환영들>은 원래 2009년 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영어로 출판되어 LA Times, Publisher's Weekly, The L Magazine, Library Journal 등에 다양한 서평이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