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을 짓누른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이제는 그 아픔을 존중할 때"                2013-05-21 07:31 | CBS 장규석 기자

"(내가 죽은 건) 엄마 잘못이 아녜요."…"아니야! 아니야! 내가 죄인이야!! 으허엉~"

죽은 아들(대리인)의 말에 엄마는 강하게 도리질을 쳤다. 무너져 내린 엄마의 눈에서 이윽고 참았던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의 최초 희생자 고(故) 김경철 씨의 어머니 임금단(81) 씨. 그녀에게 아들을 죽게 만든 것은 국가권력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다.

아들(경철)이 4살 때 심한 열병을 앓자 엄마는 아들을 둘러업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1950년대 당시, 마이신(항생제)은 만병통치약이었다. 효과 좋은 약이라고만 생각했던 무지했던 시골 아낙은 아들에게 마이신을 많이 놓아달라고 의료진에게 매달렸다.

이름을 불러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아들은 6살이 되던 해 고막과 청신경 마비 판정을 받았다. 항생제 과다투여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했다. 임 씨는 "그때부터 죄인처럼 살았다".

그러나 아들은 건강하게 성장해줬고,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겠다며 구두기술을 익혀 광주의 한 양화점에 취직했다. 그러면서 결혼도 했고, 예쁜 손녀도 낳아서 임씨를 기쁘게 했다.

손녀가 막 백일이 지났을 무렵, 운명의 날 80년 5월19일이 왔다. 그날 통금시간이 지나도 집에 들어오지 않던 경철(당시 28세)은 결국 싸늘한 주검이 되어서야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온 몸에 시퍼런 곤봉자국만 남긴 채.

이후 남편과 함께 죽겠다던 며느리는 딸에게 젖도 먹이지 않고 드러눕더니 결국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뒈지려면 혼자 뒈질 것이지 왜 이렇게 어미 가슴에 못을 박냐. 이놈아!" 혼자 남겨진 젖먹이 손녀딸을 부둥켜안고 임 씨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부르며 숨죽여 울었다. 목 놓아 우는 것도 허락되지 않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엄마 이름도 못 불러보고, 딸 이름도 못 불러보고…영문도 모르고 죽었을 우리 아들 경철이. 경철이를 생각하면 그냥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요. 내가 그때 마이신… 마이신 놓아달라고 고집부리지만 않았어도… 내가 경철이를 죽였어요!"

◈ "국가권력 앞에서 무력했던 내 모습, 용서가 안 돼"

국가권력이 아니라 내가 아들을 죽였다. 엄마는 그렇게 33년 동안 죄인이라고 자책하며 살았다. 죄인된 사람이 어떻게 즐겁게 웃고 행복해 할 것인가. 아들이 죽은 뒤부터 한 번도 크게 웃어보질 못했다. 행복은 한 순간이라도 허락할 수 없는 사치였다.

가족심리치료의 한 방법으로 쓰이는 '가족세우기' (Family Constellation) 작업이 계속됐다.

죽은 아들(대리인)의 말. "엄마 잘못이 아녜요." 엄마는 강하게 저항한다. "아니야 내가 몰라서 그런거야!" 쏟아지는 눈물. "내가 죽은 건 엄마 잘못이 아니에요." 아들의 말에 엄마는 더욱 강하게 저항한다. "아니야 내가 죄인이야!"

치료사의 말을 받아 아들이 다시 말했다. "엄마 고마워. 내 딸을 자식같이 키워줘서." 임 씨의 표정이 누그러진다. "그래 맞아 혜정이(손녀)는 이제 결혼해서 아들까지 봤단다." "그래요 혜정이를 통해서 저는 살아있어요" "그래 네 딸이 저렇게 잘 살고 있다… 나는 정말 죽고 싶었지만, 그래도 네 씨는 내가 지켰다. 아들아!" "어머니, 언젠가 우리는 다시 만날 거에요. 그 때까지는 이제 편안하세요."

그제야 눈물로 범벅이 된 임 씨가 깊은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시집가서 잘 살고 있는 손녀를 떠올리자 가슴을 치던 통곡은 위안과 애도의 눈물로 변했다.

가족세우기 치료사로 나선 최광현 교수(한세대 상담대학원)는 "여기에 선 임금단 씨 뿐 아니라 모든 5.18 희생자의 가족들이 자신을 스스로 죄인으로 만들었고, 죄인의 삶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거대한 국가권력 앞에서 한낱 힘없는 개인에 불과했던 가족들은 자신의 무기력을 죄로 돌렸다. 국가권력이 아니라 그 앞에서 힘이 없었던 자신이 용서가 안 됐다. 마음껏 웃을 수도 없고, 즐거운 노래도 흥얼대다가도 죽은 이를 생각하면 죄책감에 목이 탁 막혀버렸던 트라우마.

◈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에서 소통은 시작된다

80년 이후 지난 33년을 깊은 아픔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아온 5.18 희생자 가족 12명이 지난 19일 광주 로터스 갤러리 2층에 모였다. 이날 오월 어머니회를 비롯한 희생자 가족들은 최광현 교수가 진행한 가족세우기 치료에 참가해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자신들이 짊어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복잡한 전철 안에서, 도로 위에서, 직장에서, 다양한 상황에서 사람의 마음은 끊임없이 상처를 입는다. 사소한 상처는 분노를 일으키지만 곧 잊혀진다. 그러나 어떤 상처는 도저히 잊을 수도 없고 씻을 수도 없다. 최 교수는 "이것이 바로 '트라우마'고, 대개 트라우마는 가족과 관련된 상처"라고 설명했다.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고 자해하면서 아픔에 대처한다. 최 교수는 "상처 난 자존감을 치유하고 과거와 현재를 분리하면서, 상처를 새로운 관점으로 들여다 볼 때 아픔이 제대로 다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5.18과 같은 거대한 사건에 대한 상처는 좀처럼 치유되기 힘들다. 2년째 이 행사를 기획해 온 묘운 승려 또한 5.18에 대한 아픔을 갖고 있다. 80년 5월 조선대학교 학생으로 5.18의 현장을 몸소 겪었던 묘운 승려는 "희생자 가족의 아픔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고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작지만 의미있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3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5.18 피해자들은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아픔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다. 그때라야 소통이, 진정한 치유가 시작된다.

5.18에 대한 역사왜곡이 다시금 논란이 되고 있는 지금, 우리사회는 이들의 아픔을 존중하고 있는가.

▶1-4-3 기사 copyright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www.nocut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