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6-03 21:51:12수정 : 2013-06-03 21:51:12

“정부가 국민의 기억을 획일화할 권한이 있는가”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ㆍ대한민국 역사박물관 문제점 토론… ‘역비’ 최근호 게재
ㆍ5·16쿠데타 부당성 지적한다더니 정당성 합리화로 변질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기본계획 연구(2010년 1월)에서는 5·16군사정변의 부당성을 인식시킨다는 관점이 제시되었으나, 실제로는 5·16군사정변이 제2공화국의 혼란 때문에 일어났다는 방향으로 서사가 바뀌었습니다.”

김성보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지난달 31일 역사정의실천연대 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 나와 건립위원회 논의 과정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가 더욱 편향적인 방향으로 왜곡된 사례로 5·16쿠데타를 들었다. 그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부가 당대의 역사해석을 독점해 국민의 기억을 획일화할 권한이 있는지, 그 기억을 담는 공간인 현대사박물관을 국립으로 운영함이 타당한지를 두고 운영 주체와 운영 방법, 전시 내용 문제 전반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2009년 4월에 국무총리 소속으로 출범한 건립위원회의 모든 중요한 결정, 즉 건립 비전, 명칭, 주제 제목, 개관일 등은 오직 집권자의 의중을 반영하며 사회적 논란을 회피하려는 정치적 판단 속에 이루어졌다”며 “이명박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며 사회 공론과 학계 전문성을 배제했고, 건립 과정에서 비민주성과 비전문성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내에 새마을운동을 재현한 미니어처와 관련 애니메이션.

 


‘대한민국의 태동’(제1전시실)-‘대한민국의 기초 확립’(제2전시실)-‘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제3전시실)-‘대한민국의 선진화, 세계로의 도약’(제4전시실) 순의 전시실 구성은 ‘성공 신화로 가득 찬 국가 성장 사관’을 보여준다.

김 교수는 “박물관이 구현하고 있는 역사인식은 민족보다 국가를 앞세우고, 그 국가를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발전의 측면에서만 파악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관을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박물관의 통일 문제 실종과 분단고착적 역사인식, 정치적 민주화로만 축소된 민주주의의 역사, 국가 정통성에 대한 형식적 집착과 건국이념의 왜곡 문제를 비판했다.

이기훈 목포대 사학과 교수는 기초적인 역사적 사실도 확인하지 못한 부실·졸속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박물관의 설명 패널에는, ‘(강화도조약은) 조선 정부가 협정관세나 일본인 치외법권과 같은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인 불평등 조약’이라고 설명되었는데, 강화도조약은 협정관세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 교수는 윌리엄 서튼이라는 이름이 든 깃발을 ‘미 6사단기’라고 전시했는데, “부대 상징인 군기에 개인의 이름을 넣었을 리가 없다. 아마 군인의 개인 기념품쯤 되는 물건일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3·1운동을 보도한 외국 잡지’라고 소개하는 ‘차이나 프레스’는 잡지가 아니라 소책자라고도 했다. 최남선이 창간한 ‘소년’지에 대해 ‘1908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잡지’라고 설명을 달았으나, 이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잡지는 1896년 2월15일 대조선인 일본 유학생 친목회에서 발간한 ‘친목회회보’ 또는 1896년 11월30일 독립협회에서 발간한 ‘대죠선독립협회회보’ 둘 중 하나로 잡는다”며 “ ‘소년’은 한국 최초의 근대적 ‘종합’ 잡지”라고 했다. ‘제국신문’ ‘황성신문’ 등 전시 신문이 창간연도와 실제 발행일이 기준 없이 뒤섞인 경우도 있었다. 예닐곱 권의 책을 겹쳐 전시하고는 각각의 책에 대한 설명 없이 ‘조선의 풍물, 종교 등을 기록한 책’이라고 적었다.

양정심 고려대 연구교수는 “역사박물관도 다양한 사실과 자료를 보여주려는 나름의 노력은 하고 있다”면서도 ‘선별된 내용’ 그 자체의 편향성을 띠고 있다고 했다.

양 교수는 “역사박물관의 가장 큰 한계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등 과거사 청산에 대한 내용이 생략된 점”이라며 “한국전쟁 전후 일어난 민간인 학살은 과거사 청산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제주4·3위원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등 국가 차원에서 다루어진 사안임에도 박물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인류의 삶에서 ‘인권’은 보편적 가치이다. 국가폭력이나 민간인 학살 등 인권을 다루지 않는다면 균형 있는 시각이라는 주장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 학자의 발표문은 ‘역사비평’ 최근호(103호)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안티가이드북’ 기획에도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