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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2015-11-16 19:17수정 :2015-11-17 10:13
15일 프랑스 파리 공화국 광장에서 시민들이 마리안 동상 아래 꽃과 촛불을 놓고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동상에는 프랑스어로 ‘두려워하지 않는다’(MEME PAS PEUR)라고 쓰인 펼침막이 걸렸다.  파리/조일준 기자 <a href="mailto:iljun@hani.co.kr">iljun@hani.co.kr</a> 15일 프랑스 파리 공화국 광장에서 시민들이 마리안 동상 아래 꽃과 촛불을 놓고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동상에는 프랑스어로 ‘두려워하지 않는다’(MEME PAS PEUR)라고 쓰인 펼침막이 걸렸다. 파리/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조일준 기자의 파리 테러현장 르포

무차별 테러가 발생한 지 사흘째인 15일 일요일 저녁(현지시각) 파리 시내 ‘공화국 광장’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마리안 동상 아래엔 수백 수천 송이의 꽃과 촛불이 놓였다. 지난 1월 시사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직후 수천개의 볼펜이 쌓였던 곳이다. 마리안은 자유·평등·박애로 표상되는 프랑스의 가치를 의인화한 여성으로, 화가 들라크루아의 명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년) 속에서 한 손에는 삼색기, 한 손엔 총을 든 모습으로도 그려졌다.


마리안 동상에 프랑스어로 ‘두려워하지 않는다’(MEME PAS PEUR)라고 쓰인 펼침막이 걸렸다. 이슬람국가(IS)의 비인도적인 무차별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추모객들은 마리안 동상을 중심으로 서로 손을 맞잡고 서서 ‘연대’의 뜻을 나타냈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촛불을 밝혔다.


공화국 광장 마리안 동상 아래
수천송이 꽃과 촛불
“고통과 슬픔 나누고 싶어”

“이슬람 극단주의 용서 못하지만
유럽국, 아랍계 차별 큰 문제”
모로코 이민2세 끝내 눈물


촛불을 묵묵히 바라보는 시민들 중엔 파리 태생의 마르고 셰보도 있었다.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왜 지금 여기에 있나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숨졌어요. 그들은 누군가의 가족, 친구, 연인일 수 있어요. 모든 시민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어요. 정말 고통스러워요. 분노는 없어요. 단지 너무 슬플 뿐입니다. 고통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요.”

테러에 희생된 이들을 생각하며, 평화를 염원하는 동료 시민들과 함께 있고 싶어서 공화국 광장에 나왔다고 했다. 이들의 가슴을 지배하는 것은 분노가 아닌, 슬픔이었다.


광장에서 파리 중심가인 3구로 향하는 몇몇 길목은 바리케이드로 봉쇄된 채 경찰과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광장은 3구와 10구, 11구가 만나는 곳으로, 프랑스 혁명 이후인 1879년 제3공화국 시절에 ‘공화국 광장’으로 개칭된 상징적 명소다. 10구와 11구는 모두 129명의 목숨을 앗아간 6건의 동시다발 테러 가운데 5건이 발생한 지역이다. 특히 최악의 참사가 벌어진 바타클랑 콘서트홀과 카페들이 ‘톨레랑스’(관용)를 강조한 18세기 진보적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1694~1778)의 이름을 딴 거리인 볼테르거리 인근에 몰려 있다. 이곳에서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인 테러 행위가 벌어진 것은 역설이다.


크리스텔 카리아는 “나는 무슬림도 가톨릭 신자도 아니지만 이슬람 극단주의는 용서하기 힘들어요. 그러나 유럽 국가들이 아랍계 시민들의 사회통합에 실패하고,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이 수십만명을 학살하고 있는 비극을 외면해온 것도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1962년 식민지 알제리와 전쟁을 한 끝에 알제리를 독립시켜 준 뒤 알제리 시민들을 값싼 노동자로 활용하고도 2등 인간으로 차별해왔어요. 사람들은 섞여 사는 법을 배워야 해요.” 카리아는 “나는 파리에서 태어나 프랑스 시민으로 자랐지만, 어머니가 모로코 출신으로 알제리를 거쳐 프랑스에 온 이민자”라고까지 말하다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끔찍한 테러를 겪고도 이들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있었다. 셰보는 “종교 극단주의자들의 과잉행동은 결코 시민들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행위가 아니에요. (이번 테러는) 분노의 차원을 넘어선 사건이고, 프랑스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는 사건이에요. 역사적으로 프랑스는 이주민들로 채워진 나라이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왔어요. 프랑스 내 무슬림들이 사회적 기회를 얻는 데서 차별받는다면 그건 잘못된 거죠. 아랍계나 무슬림을 구별 짓고 소외감을 느끼게 해선 안 되죠. 종교와 핏줄에 상관없이 좋은 사람들이 서로 배려하고 보호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와 세계 각국이 이번 테러에 강력하게 응징하겠다는 뜻을 밝힌 데도 우려를 나타냈다. “반인간적인 범죄자들은 처벌받는 게 맞지만, 무력 보복은 더 나쁜 상황을 만들게 되고, 이런 일이 되풀이되죠. 각국 정부들은 돈과 이익이 없으면 내 일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진정한 힘과 지혜는 시민들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광장의 다른 한편에 놓인 촛불들 앞에선 한 여성이 예닐곱살쯤으로 보이는 어린 딸에게 촛불을 붙여주고 바닥에 놓게 한 뒤, 함께 쪼그려 앉아 뭔가를 얘기해주고 있었다. 공화국 광장은 물론 거리 곳곳에는 촛불과 꽃다발, 추모의 글을 적은 쪽지들을 모아놓은 장소가 마련돼 있다. 시민들은 그곳에서 촛불을 켜고, 묵념을 하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민들은 그렇게 서로를 다독였다.

무차별 테러의 충격은 일상을 흔들고 있다. 폭죽 터지는 소리, 백열전구가 터지는 소리에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날 오후 공화국 광장에서 테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시민 수백명이 폭발음 소리에 정신없이 뛰기 시작해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광장이 텅 비기도 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폭발음은 폭죽 소리로 밝혀졌다. 또 어디선가 백열전구가 터지면서, 지난 금요일 밤 총격을 받은 술집인 ‘르 카리용’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파리/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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