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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7 14:34:44 (*.112.1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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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률의 씨네포커스]  '지슬',  죽이는 이도 죽는이도 모르는 이유, 우리들이 대답할 차례다

 

<지슬>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아니,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주 극장은 온통 <아이언맨3>로 장악되어 있다. 예매 점유율이 80%를 넘어섰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야말로 극장을 도배하고 있는 것. 때문에 어떻게든 <아이언맨3>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언맨3>보다 내 눈길을 잡은 것은 <지슬>이었다. 개봉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꾸준히 흥행하고 있는 것. <아이언맨3>처럼 폭발적인 흥행세는 아니지만, 서서히, 마치 스펀지가 물감을 빨아들이듯이 조금씩 조금씩 기세를 올리고 있다. 세상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정말로 지독한 것은 서서히 물드는 것이라는 걸. 서서히 물드는 것은 결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지슬>이 24일, 12만 3천 250명을 기록해, 국내 독립영화 중 역대 흥행 2위인 <똥파리>의 12만 3천 36명을 넘어섰다. 100개가 되지 않는 스크린으로 관객 10만을 모은 것은 <똥파리> 이후 4년만이다. 독립영화 역대 흥행 1위는 300만 명을 기록한 <워낭소리>인데, 현실적으로 이를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지슬>이 기록한 12만 명의 기록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도무지 1만 명의 관객도 쉽게 모으지 못할 만큼 실험성이 강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지슬>은 제주 4.3 학살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최첨단 디지털의 시대에 흑백으로 촬영되었고, 대담하게도 서사 중심의 영화에 익숙한 이 땅의 관객에게 이미지 중심의 영화를 선보였다. 마치 한 편의 그림처럼 섬세하게 촬영된 화면과, 이들의 불연속적 편집, 여기에 더해지는 기괴한 음악, 천천히 이동하거나 심지어 정지된 카메라, 더구나 무슨 말인지 자막을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제주도 방언, 그리고 무명의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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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슬> 포스터.
4.3 학살이라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사건을 다루면서, 왜 그 사건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사건이 전개되었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특정 마을의 사람들이 며칠 동안 동굴에서 견디는 이야기만 천천히 진행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걱정을 하지 않는다. 마치 고흐의 그 유명한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처럼 순박하고 정직한 모습만 재현된다. 토벌대는 토벌대대로, 민간인을 학살하기보다는 각자의 고민에 빠져있다. 특히 박 일병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느냐고 자문한 채 괴로워한다.

이런 영화가 흥행을 하는 이 현상이 나에게는 참으로 낯설다. 아무리 선댄스영화제에서 극영화 부문 최고 대상을 수상했다고 하더라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우리 관객은 지금 칸영화제 대상작도 제대로 보지 않는 상황 아닌가? 김지운이나 박찬욱이 할리우드에 진출해 만든 영화도 참패를 면하기 어려운 상황 아닌가? 그럼에도 <지슬>에는 아낌없는 관심을 쏟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오멸 감독은 제주 4.3 학살을 다루면서 어떤 원칙을 정한 것 같다. 역사적 맥락에서 복원하기보다는 예술가의 개인적 입장에서 그리는 것. 역사가가 역사를 해석하는 사람이라면, 예술가는 예술을 창작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 시각에서 오멸은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를 만들어 냈다. 그 전에는 도저히 볼 수 없었던 영화. 때문에 영화에는 왜 4.3 학살이라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는지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토벌대는 빨갱이를 잡아야 한다고 광분하지만, 양민은 빨갱이 때문에 죽으면서도 “빨갱이가 뭐길래” 라며 죽어간다. 결코 서로 다가갈 수 없는 이 역설! 과연 누가 빨갱이인가?

오멸은 구체적인 역사의 인과를 영화 속에 담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지만, 그리 효율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기서 오멸은 고(故) 김경률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지슬>의 공식 명칭은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이다. 제주 출신의 감독, 제주인과 함께 4.3을 소재로 만든 고 김경률의 <끝나지 않은 세월>은 현재와 과거를 교차 편집하면서, 과거의 원인과 사건 전개, 현재의 아픔을 직조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런 욕심이 과해 제대로 된 극장 개봉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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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슬>의 한 장면.
여기서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지슬>을 본 대부분의 관객은 이 영화가 참으로 웃기면서도 슬픈 영화라고 말한다. 순박한 사람들의 웃음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웃기고, 그들이 죄 없이 죽기 때문에 슬프다고 말한다. 오멸이 말하려한, 무고한 양민 학살의 사연을 보여주려한 목적은 달성된 것 같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멈춰야 할 것인가? 아니다. 오멸이 이 영화를 제사 형식으로 만든 것은 사연이 있어서다. 영화 첫 장면에 제기(祭器)를 클로즈업 해 제사 분위기를 만들고, 중간 중간에 자막으로 제사 용어를 넣은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다.

<지슬>을 보면, 분명 사람을 죽이는데, 죽이는 이도 죽는 이도 그 이유를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죽였고 죽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물어야 한다. 누가 그들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 것도, 단지 아름다운 영상과 풍광의 기괴한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 순박한 그들이 죽어갔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누가 사죄해야 하는가? 감독은 이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 주었고, 영화를 본 우리들이 이제 대답해야 할 차례다. 이 역사를 우리는 그대로 내버려 두어야 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일본에게 사죄하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영화는 끝났지만 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강성률 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
 
컬처 투데이 입력 : 2013-04-27 09:06:20 노출 : 2013.04.27 09: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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