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01 08:08 수정 : 2013.04.01 08:08

 

4·3사건 65돌 맞는 두사람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시절인 지난해 12월11일 제주 서귀포시에서 유세하고 있다.(왼쪽) 제주 4·3 유족들이 2011년 4월3일 4·3 위령제에서 제주4·3평화공원 안 행방불명인 희생자 묘역에서 참배하고 있다. 허호준 강창광 기자

유족생계비 지원·평화공원 조성 등
대정부 7대 건의사항 이행률 ‘미흡’
추모기념일 지정은 논의조차 안돼
추가진상조사도 법적 구속력 필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노란 유채꽃으로 물든 제주도의 4월이 오면 관광객들은 들뜨지만, 제주도민들은 ‘4·3 앓이’가 시작된다.

제주4·3연구소가 지난 28일 제주시 열린정보센터에서 연 ‘증언 본풀이마당’에 나온 김이선(82)씨가 부모와 오빠를 잃은 이야기를, 고신종(78)씨가 제주시 중산간 마을이었던 용강리 대토벌작전 때의 참혹한 상황을 이야기하자 장내는 깊은 수렁 같은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올해 65돌을 맞는 4·3 위령제를 앞두고, 3월1일 4·3 영화 <지슬>이 개봉돼 4·3 관심도는 예년에 견줘 전국적으로 훨씬 더 높아졌다.

2003년 10월 총리실 산하 제주4·3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가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펴내고, 같은 달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국가원수로는 처음 ‘과잉진압’에 대해 제주도민과 유족에게 공식 사과했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흘렀지만, ‘4·3 문제’의 해결은 여전히 더디기만 하다.

대정부 7대 건의사항 이행 여부 제주4·3을 두고 ‘국가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대량학살’을 정부가 공식 인정한 것은 제주4·3위원회가 펴낸 진상조사보고서가 처음이다. 제주4·3위원회는 보고서 발간과 함께 정부에 7대 건의사항으로 △도민과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의 사과 △추모기념일 지정 △진상보고서 교육자료 활용 △평화공원 조성 지원 △유가족들에 대한 실질적 생계비 지원 △집단매장지 및 유적지 발굴사업 지원 △진상규명 및 기념사업 지속 지원 등을 제시했다.

10년 가까이 흐른 현재, 건의사항 가운데 60%가량 이뤄졌다는 게 4·3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통령이 정부를 대표해 사과했고, 중·고교 역사교과서 15종 가운데 14종에 4·3 관련 내용이 담겨 교육자료 활용도 꽤 이뤄졌다. 집단매장지·유적지 발굴·정비도 2006~09년 이뤄져 유해 384구와 유류품 1970점이 발굴됐다.

그러나 제주도민과 유족들의 숙원인 국가추념일 지정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희생자 추모와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4·3평화공원은 2009년 이후 중단된 상태다. 기획재정부가 지방비 분담 필요성을 언급하며 예산을 배정하지 않아왔다. 이명박 정부가 4·3 문제 해결에 머뭇거리고, 수구세력의 ‘4·3 흔들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유족 생계비도 국가가 지원하는 것은 한푼도 없다. 제주도가 조례를 제정해 2011년 9월부터 80살 이상 1세대에 한해 월 8만~3만원을 지방비로 지원하는 수준이다. 지난해에는 1649명에게 6억6500만원을 지원했다. 유족 진료비는 제주4·3평화재단이 본인 부담액의 30%를 지원한다. 재단 예산 20억원 가운데 7억원이 진료비 지원에 써야 해 다른 사업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 ‘제주4·3 완전한 해결’을 약속하는 펼침막을 제주도 거리에 내걸었다. 제주4·3연구소 제공

추가 진상조사 현황과 문제 제주4·3평화재단은 진상조사보고서에서 미흡했던 분야를 밝히려 지난해 3월 7명으로 ‘4·3사건 추가진상조사단’을 꾸렸다. 조사단은 2015년 3월까지 3년 동안 마을별 피해 실태, 행방불명 희생자에 초점을 맞춰 조사중이다. 지금까지 제주시 조천읍 10개 마을을 조사하고 150여명의 증언을 채록했다.

추가 진상조사 활동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제주4·3특별법과 시행령에는 ‘추가 진상조사’를 4·3평화재단의 사업에 포함했지만, 보고서 처리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4·3단체 관계자는 “추가 진상조사가 4·3평화재단 사업이기 때문에 재단 이사회에 보고하면 끝난다. 정부 공식 보고서에 포함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산은 턱없이 모자란다. 연간 2억원인 예산의 대부분은 7명 인건비로 거의 충당된다. 4·3 관련자 가운데 재일동포, 미국 자료 등의 조사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3년 동안 제주도 전 지역 전수조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찬식 4·3 추가진상조사단장은 “4·3평화재단에 상설 조사 조직을 만들거나 전담 인력을 둬야 한다. 예산 확충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