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3.04.13 19:02  

인간애 담은 묵직한 서사와 아름다운 영상미..SNS 입소문 확산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제주 4·3의 원혼을 위로하는 진혼곡 같은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이하 '지슬')이 전국 개봉 22일 만인 지난 12일 누적관객 10만을 돌파했다.

일반 상업영화의 1/10도 안 되는 2억5천만 원의 제작비로 제주의 영화인들이 서울에서 촬영 장비를 공수해 어렵게 찍은 이 독립영화가 고작 50-60개 상영관에서 어떻게 10만 명에게 가 닿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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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독립영화가 10만 관객을 넘기는 2009년 '똥파리'(12만3천명) 이후 4년 만이다.

'워낭소리'나 '똥파리' 등 기존에 흥행한 독립영화에 비해 더 무겁거나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현대사의 비극을 다루면서 이처럼 흥행한 것은 더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흥행 열풍은 무엇보다 영화 자체가 지닌 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개봉 전부터 해외에서 들려온 수상 소식과 문화계의 지지, SNS를 통한 관객들의 자발적인 홍보가 큰 도움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지슬'의 아름다움, 관객 마음을 두드리다 = 영화는 제주 4·3이라는 역사의 비극을 다루면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둬 대중의 공감을 폭넓게 이끌어 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순박한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은 난리를 피해 영문도 모르고 동굴에 숨어들지만, 컴컴하고 답답한 동굴에서도 긍정과 낙관, 여유를 잃지 않는다. 집에 두고 온 돼지 걱정을 하고 동네 총각이 어찌 장가를 갈지 걱정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웃을 수밖에 없다. 이런 소소하고 순박한 익살이 이들을 관객의 이웃처럼 느끼게 하고 이후 일어나는 비극을 더 아프게 체감하게 한다.

특히 굶주림에 지쳐가면서도 지슬(감자)을 조금씩 나눠 먹는 모습, 어머니가 불길 속에서 지킨 '뜨거운 감자'를 나눠 먹는 장면은 관객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먹먹하게 한다. 비극 속에 피어난 인간애와 모성 등 보편적인 정서를 따뜻하게 그렸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으로 꼽힌다.

또 보기 드문 흑백영화로서 지닌 뛰어난 영상미도 호평받았다.

외지인들에게 관광지로만 인식되는 제주의 표면적인 아름다움을 배제하기 위해 오멸 감독은 컬러로 찍었으면서도 색을 일부러 뺐다. 이로 인해 한 장면 한 장면이 한 편의 수묵화처럼 아름답게 그려졌고 이야기 속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박찬욱 감독은 '지슬'을 보고 "단순히 4.3을 다뤘다는 사실만으로 평가해줘야 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예술 작품으로 충분히 독창적이고 훌륭하다. 굉장히 웃기면서도 아름답고 그런데 웃길수록 슬프고, 아름다울수록 슬픈 영화다"라고 말했다.

미국 선댄스에서 들려온 낭보 '심사위원대상' = '지슬'의 이런 높은 완성도는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으면서 흥행의 불씨를 만들었다.

지난 1월26일 미국에서 열린 제29회 선댄스영화제에서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최고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Grand Jury Prize)을 받았다. 대상 선정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이뤄졌으며 결정하는 데에 1분도 채 걸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심사위원들은 "깊이 있는 서사와 더불어 시적인 이미지까지 '지슬'은 우리 모두를 강렬하게 사로잡을 만큼 매혹적이었다"고 평했다.

이 영화는 또 2월12일 프랑스에서 열린 제19회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에서도 최고상인 황금수레바퀴상을 받았다.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 선댄스영화제와 문화 강국 프랑스의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았다는 소식은 영화계뿐만 아니라 영화에 관심 있는 일반 관객들까지 '도대체 어떤 영화이기에?'라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따라 개봉 전 몇 차례 열린 특별상영은 족족 매진됐고 영화를 본 사람들의 호평과 추천이 시작되면서 '지슬'을 둘러싼 열기는 점점 달아올랐다.

문화계·관객들 추천 릴레이, SNS 확산 = 개봉 이후 흥행 열기에는 영화인을 비롯한 문화계 인사들의 지지와 지원이 힘을 보탰다.

3월1일 제주의 2개 상영관에서 처음 개봉한 날에는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과 안성기, 강수연 등의 배우가 '파이팅 지슬 원정대'를 꾸려 제주를 찾아갔다.

강수연은 특히 "많은 사람이 꼭 봐야 할 영화"로 소개하겠다며 서울 개봉일인 3월21일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의 한 회차 티켓 전량을 구매해 영화 팬들에게 증정하기도 했다.

이미례 감독도 '지슬'을 지인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며 100석의 단체 티켓을 구매했다.

배우이자 정치인인 문성근과 제주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만화가 고필헌 등 '파워 트위터리언'들도 계속해서 '지슬' 관련 트윗을 올리거나 리트윗해 영화에 관한 호평을 확산시켰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보컬 송은지와 요조 등 인디음악 스타들도 트위터를 통해 이 영화를 적극 알리고 지지했다.

일반 관객들의 SNS 호응도 뜨거웠다. 특히 제주 4·3 65주기인 지난 3일에는 영화를 이미 본 관객들이 "오늘은 꼭 '지슬'을 봐야 한다"는 캠페인성의 트위터를 대거 올리면서 하루 동안에만 200여 개의 관련 트위터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지금까지 트위터에 올라온 '지슬' 관련 트윗은 수천 개에 이르는 것으로 배급사 측은 추정한다.

김난숙 영화사 진진 대표는 "현대사를 다뤘다는 점에서 좌-우의 이야기일 거라고 많이들 예상하는데, 영화를 보면 그런 얘기가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고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느끼기 때문에 일반 관객들의 호응이 큰 것 같다"며 "영화를 먼저 본 관객들이 '한 번쯤 볼 만한 영화'가 아니라 '꼭 봐야 할 영화'로 추천을 하면서 입소문이 점점 증폭되고 있다"고 말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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