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주도 학살사건, 공소시효 없애야"

 

함평 유족회, 한국전쟁 양민학살 등 시효 폐지 주장

(함평=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국가가 주도한 학살에 민간인이 희생됐는데 가해자인 국가가 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 아닙니까?"

 

한국전쟁 당시 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에게 국가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온 가운데 국가 주도 학살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는 유족들의 주장이 제기됐다.

 

정근욱 사단법인 함평사건희생자유족회장은 3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법원이 피해자와 유족의 억울함을 일부 풀어준 것은 고맙지만 국가 폭력 앞에 민간인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공소시효를 정해놓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33부(이우재 부장판사)는 임모씨 등 17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상 규명 결정이 사건 발생 59년 만인 2009년에야 이뤄진 만큼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가 소멸됐다'는 국가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30일 밝혔다. 

 

그러나 지난 2007년 진실규명 결정에 포함된 희생자 유족에 대해서는 "국가의 불법행위 사실을 알고 3년을 넘긴 후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의 청구권은 시효로 소멸됐다"며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함평 유족회에 따르면 지난 2007년과 2009년 과거사정리위의 조사를 통해 규명된 함평 지역 희생자는 898명이지만 그렇지 못한 피해자도 800여 명에 달한다.

 

정씨는 "기록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피해자나 유족이 국가를 믿지 못해 조사에 불응한 경우가 상당수"라며 사건의 진상을 안 이후 3년 이내에 소를 제기해야 한다는 법 규정이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또 부모·형제를 잃고 평생을 아픔과 가난 속에 사는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해야 보상받을 수 있는 현 제도를 비판하며 정부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및 위령 사업에 대한 법령 제정을 추진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이들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함평양민학살사건은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공비토벌을 위해 함평에 주둔 중이던 국군 제11사단이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하고 가옥을 불태운 사건이다.

areum@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2/10/31 17:0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