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뀌니 진실화해위도 변해

시사INLive|차형석 기자|입력2012.07.05 09:46

 

학림 사건은 2005년 12월에 설립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2009년 6월에 재심 권고를 하고 법원이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면서 이번 재심 판결에 이를 수 있었다. 진실화해위가 재심을 권고한 건수는 73건. 이 가운데 47건에 대한 재심 절차가 완료되었다. 재심 결과 대부분이 무죄로 확정되었다. 긴급조치와 재일동포간첩단 사건에 대한 재심 재판을 맡은 조영선 변호사에 따르면 재심 재판 사유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위조된 증거나 위증이 드러난 경우, 명백히 새로운 증거가 나타난 경우, 수사 과정에서 고문 등 직무상 범법행위가 발견된 경우 등이다. 재심 요건이 극히 까다로운데, 진실화해위에서 고문·폭행 등을 밝혀내 재심 재판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물론 진실화해위가 재심을 권고한다고 해서 모두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경우 법원이 재심 개시를 결정했으나 검찰이 즉시 항고하면서 대법원에서 수년째 사건을 묵히고 있는 실정이다(오른쪽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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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이영조 전 진실화해위원장

아이러니한 것은 재심이 시작되는 데 진실화해위가 획기적 기여를 했건만, 재심을 가로막는 주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이영조 전 진실화해위원장(사진)이라는 사실이다. 이영조 전 위원장은 참여정부 시절에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몫으로 위원회에 들어갔다가 정권이 바뀐 뒤 위원장이 되었다. 그는 2010년 4월에 한 일간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법원이 따로 조사하지 않고 우리(진실화해위) 결정을 인용해 굉장히 빠른 속도로 판단을 내리시는데요. 저희가 그럴 정도로 평가받을 수 있는지 불안하거든요"라고 말했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의 신뢰성을 낮출 수 있는 이 인터뷰 내용이 재심의 반대 근거로 자주 첨부된다고 한 변호사는 전했다. 보수 단체인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초대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이 전 위원장은 국제 심포지엄 영문 자료집에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 4·3을 '광주반란' '4·3폭동' 등으로 표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고문 피해자 10여 명이 국가배상금의 일부를 내놓아 설립한 재단법인 '진실의 힘'의 송소연 이사는 '재심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고 말한다. 송 이사는 2005년 '함주명 간첩조작 사건'이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이후부터 간첩단 조작 사건 등 여러 재심 사건을 담당해왔다. 그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기까지 어려움이 많다. 고령의 피해자들이 감당하기에는 재심 재판이 너무 오래 걸리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검찰이 항소를 하는 경우도 잦다. 진실화해위 등에 진정도 못 해본 사건들의 피해자는 어떻게 구제할지에 대해서도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차형석 기자 / cha@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