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2011년 2월24일 전국유족회 상임의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내가 유족회를 위해서 할수 있는 일이 무었인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결론은, 흩어져 있는 100만 유족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것 이였습니다.

 

유족들의 투쟁목표는 이명박정부와 새누리당과 과거사 문제를 끊임없이 폄훼하는 보수세력이지, 투쟁과정에서 다소의 의견차이로 맞서있는 유족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국유족연합회(대표 윤호상) 총회에 직접 참석해서 (대구역 청사)유족들을 격려하고 본인의 뜻을 피력 했습니다.  그뜻에 적극 공감한다는 입장을 확인 했습니다.

 

그후 많은 유족원로들께 (양용해, 정근, 곽정근, 박남순, 서영선, 정해열, 이광달, 노치수, 류영달, 김보희, 노병량등) 본인의 뜻을 전달했던바,적극 찬성 했습니다.  그후 전국유족회에서는 정석희 총괄사업단장이 나서서 이일을 앞장섰습니다.

대구역그릴과 서울역 그릴에서 몇차례 만나서 쌍방이 합의를 하고 각단체의 홈페이지에 내용을 게시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내용인지 유야 무야되고 말았으며, 소신껏 일을 추진했던 정석희 총괄사업단장이 물러나고, 전국유족회의 구성에 변화가 생기고 말았으며,  앞에서는 통합을 찬성하면서도, 뒤에서는 상대방을 비난이나 하는 보이지 않는 세력이 있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잘아시겠지만 지역에 계신 유족님들이 전국유족회에서 활동하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시 각각으로 변화하는 정치 환경속에서 즉시 대응해서 유족의 목소리를 내주기 위해서는 수도권에 거주하는 유족들이 뭉쳐줘야 합니다.

그동안  전국유족회(대표 김종현)에서 일년여의 기간동안 투쟁하는 내용을 보니, 그들에게만 맡겨놓을수가 없으니  재경유족회를 구성해서 투쟁하는데 앞장서고 유족회를 활성화 시키자 는데 의견을 모았으며, 재경유족회는 전국유족회의 산하단체이며 회비도 전국유족회에 납부하는것으로  탄생한것입니다,(재경유족회회칙참조) 또한 창립총회때도 김종현 상임의장에게 통보했으며 축사까지 의뢰 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종현은 불참했으며  당일에 십시일반으로 모아진 기금중 일부를 전국유족회 통장으로 입금시켰으나 며칠후 그돈이 다시 되돌아 왔다고 들었습니다.

 

2012년 총회 내용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2월27일 2011년도 정기총회가 열렸습니다. 행안부에서 4.800만원의 지원금이 나왔다고 유족여러분 기뻐해주십시오.라는 문자를 전국의유족들에게 날려 보내놓고 그집행내용에 대해서는 결산보고서에 올리지도 안았습니다. 전국에서 올라온 유족들이 따지자, 당황한 집행부는 답변한마디 못하고 회의를 못진행한체 폐회선언을 하고 말았습니다.

2월27일자로 사실상 전국유족회는 임원도 없는 무주공산이 되고 만셈입니다.

그래서 본인과 여러 유족원로들께서 고문회의를 소집해서 "비대위"를 구성하고 비대위에서 인재를 지역과 능력을 고르게 평가해서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하라고 조언을 했습니다만, 원로들의 뜻은 전혀 무시한체 대전 유성에 있는 모호텔에서 입에 맞는 인사들만 모아놓고 예행연습을 한뒤 4월17일 각목으로 무장한 괴한들을 문에세우고 2시 회의라고 공고해놓고 1시40분에 문을 걸어 잠그고 성원도미달(31명참석자중에는 무자격자다수포함)  된상태에서 회의 참석을 위해서 새벽잠을 설치고 올라온 유족들은 참석도 못하게하고 회의참석을 요구하는 유족들을 경찰을 동원해서 제압하는 "이승만" "박정희" 보다 못한 악랄한 방법으로 임시총회를 어물쩍 넘기고 말았습니다.

 

모든 단체는 회칙에 의해서 운영된다는것은 상식입니다.

전국유족회 회칙 어느 조항에도 회비를 내지않으면 회의에 참석못한다는 조항이 없습니다. 그들의 논리 대로라면 세금을 안냈으니" 국민"이 아니며 "투표권"이 없다는 논리와 똑 같습니다.또한 행안부에서 지원받은 자금은 100만 유족을 위해서 고루 씌여져야지 김종현을 비롯한 특정인들이 쉬쉬하면서 쓸수 있는돈이 아닙니다.왜냐하면 그돈은 국민의 혈세 이기때문입니다.

 

총회에 나온 자료집을 검토해본바, 일년동안 정치권을 향해서 목소리를내고, 유족의 입장을 대변한 내용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무국장이 써준 추도사한장 들고 여기저기 위령제나 찾아가서 추도사나 읽는것이 유족회활동의 전부가 아닙니다.

지난 울산보도연맹사건만 보더라도 재판이 4년가까운 세월 지연이 되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연기, 또 연기될때는 재빨리 유족들을 소집해서 사법부를 향해서 유족의 목소리를 내줬어야 합니다.   사법부 조차도 유족을 우습게 보고 4.11총선 직후인 4월13일 유족들에게 다시 상처를 주는 자존심 상한 판결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뜻있는 유족들이 함께 하자해도 문을 잠그고, 회비를 보내도 돌려보내고 능력있는 유족은 차단시키고, 해야할일은 많코  하니,

부득히 양심세력과 재야 원로들이 뭉쳐서 유족회를 재기 시키자는데 뜻을 모은것입니다.

 

김종현에게 묻겠습니다. 귀하는 공공연히 본인이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적시하는데 아무리 급하더라도 용어 선택을 신중을 기해주기 바랍니다.  그대들이 나를 공격했던 내용들은 하나 하나 반론을 제시한바 있으며, 이문건은 전국의 많은 유족들에게 전달해서 그대들의 주장이 허구라는 사실을 알만한 유족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또한 2010년 가을 진실화해위원회 말기가 가까워올 무렵 대전 형무소사건은 "기각"처리하기로 진화위 내부에서 거의 결정되다 싶이 했을때  내가 상임의장으로 있으면서 어떤 역할을 했으며 그때 만약에 사건이 잘못처리 되였다면 지금도 귀하가 그자리에 앉아서 지금같은 악행을 저지르고 있을지 ? 대전의 모든유족들은 지금도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지만 오히려 귀하는 나를 배신하고 조직을 배신하면서 자리보전에 연연하고 있으니 한때 귀하와 함께 활동을 한사람으로서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수  없습니다. 이제 그만 조용히 내려앉았으면 하는 충고를 드리는 바입니다. 본인은 진실화해위원회 이영조 전 위원장과 개인적으로 단둘이서 밥한끼 먹은적이 없으며 오히려 지난 총선때 강남을지역에 새누리당 공천을 받고 출마한다는 뉴스발표가 있자 마자 시민사회단체들과 협력해서 이영조 규탄 기자회견을 한바있습니다.

 

본인이 유족회 활동을 하면서 두가지 실수를 한사실을 고백 하겠습니다.

 

첫째는 김광호를 상임대표에 추천한 사실입니다.

2010년 총회를 앞두고, 집행부 구성을 함에 있어서 임원진을 젊게 해야하지 않겠느냐 하는 취지에서 집행위원장을 맡고 그동안 수고해온 김광호를 상임대표로 추천했던것입니다.  당시상임고문인 곽정근 회장은 흔쾌히 찬성을 했습니다.

그러나 김종현은 아직은 너무빠르다는 이유로 적극반대를 했습니다. 이사실이 본인에게 알려 지면서 유족회일을 거부하겠다고 해서 곽정근 상임고문께서 부산까지 내려가서 이해시켜서 총회 당일 합류하게 되였습니다만,    그후 그의 행동을 보면서 많은 실망을 하게 되였습니다.  작년 어느때는 내가 자기를 5.18진압군이라고 했으며, 자기집안은 독립운동가 집안으로서 훌륭한 가문인데 폄하하는 발언을 했다고 하면서 내용증명을 보내고 전화로 협박하면서 유능한 로펌을 통해서 고소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놔서 기다렸드니 아무말이 없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런행동을 한적이 없었습니다.그런데 지난 5월 에는 수차에 걸쳐서 나를 비방하고 내선친을 폄하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내선친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南軒 오홍탁 ; 1930년대초 신간회사건 이후 호남최대의 항일결사인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의 주역으로서 조직의 비밀을 탐지해서 독립운동에 활용하기 위해서 경찰로위장 전입,독립운동을 했던자.  이것이 내선친의 당시 신문보도 타이틀입니다.

1934년 9월7일자 조선일보호외, 1934년 9월12일 동아일보 사회면전면, 조선중앙일보및 당시의각종언론,에 보도 된바있으며, 최근에도 매년 한번정도 해남에서 발행되는 신문에 특집기사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카페 독립운동가 "오홍탁과 전남운동협의회"를 클릭하시면 제 선친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기록되여 있습니다.

 

김광호는 2010년 7월9일 본인의 카페에 들어와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부산의 현묵 김광호 입니다.

오회장님전

 

늦게 기웃거려 죄송합니다.

南軒선생의 억울함이 곧 우리 유족의 일 같습니다.

 

그러나 효자 아드님을 두셨으니

모든일들이 사필귀정으로 밝혀 지리라 믿습니다.

 

연로하신 오회장님의 수고로움에

멀리 부산에서 현묵이 머리 조아립니다.

 

더운 여름철 특히나 건강을 해칠까 염려되오니

더 더욱 노구의 옥체를 보전하시기 바라며.....

 

김광호는 컴퓨터 실력도 남보다 뛰어나니 내선친의 기록을 잘못봤거나, 봤던 내용을 망각하지는 않았겠지?

그리고 법사라는 직함을 가진자가 음력 4월초파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신날인데 어른인지 아이인지 분간못하고 인터넷으로 막말을 하는버릇은 누구한테 배운행동인지? 또한 군장교 출신이란자가 敵인지 아군인지, 민간인인지 구분못하고 무차별 사격을 가하면 어떻게 전쟁을 할것인지? 그의 저돌적이고 천방지축한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失笑를 금할길 없습니다.

자신의 가문과 조상이 자랑스럽고 소중하다면, 남의 가문과 조상의 소중함도 살필줄아는 襟度가 필요하지 않을까?

 

둘째는 조동문을 사무국장으로 재임용한것입니다.

2010년 10월경입니다. 본인이 척추관 협착증으로 인해서 강남,압구정동에 위치한 "자생한방병원"에 입원 하고 있을때 ,"대구10월항쟁유족회" 합동위령제에 본인이 가서 추도사를 하기로 되여 있었는데,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서 불참하고 대구현지에서 유족회 임원들과 진실위임원들간에 중요한 논의가 있었는데 김동순사무국장이 보고를 늦게 함으로서 유족회활동에 차질이 생기고 말았으며 김동순을 갱질해야 한다는 여론이 절대적이여서 부득히 조동문을 사무국장으로  임용하게 된것입니다.  당시 조동문은 진보신당으로 송파에서 구의원 에 출마해서 낙선하고 갈곳이 없는 실업자 신세였습니다.

 

그래서 유족원로들과 협의를 거쳐서 재임용 하게 된것입니다.

그후 조동문은 사무국장의 본분을 망각한체 유족을 편가르고 사무국장의 영역을 벗어난 행동을 지금까지 계속하면서 전국유족회 구도를 지 입맛에 맞게 조율하면서 유족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때로는 유족들을 협박하고, 때로는 달래가면서,나이든 유족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현재까지도 건재를과시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지난해 6월 대전에서 있었던 유족회 수련회에서도 공개적으로 요구한바 있습니다. 조동문을 하루빨리 내보내라고, 조동문이 있는한 유족회의 미래가 없습니다. 그는게으르고, 음흉하며, 유족회에 대한 철학도, 비젼도 애정도 없는자 입니다. 단지 자신의 자리보전을 위해서 수많은 유족들을 희생 시키면서 세월만 보내는자 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유족여러분!

이제 썩어 문드러진 그들과 함께 할수 없읍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족들을 위한 활동이나 투쟁력이나, 프로그램이 전혀없습니다. 그저 하나의 관변 어용단체 일 뿐입니다.

국가에서 돈을 갖다쓰면서 어떻게 국가를 상대로 투쟁하겠습니까? 과거사 문제가 종결되고 유족들이 국가에 원한이 없어지는날 부족하면 더 달라고 해서 써야지요.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아무리 미운 정부라도 국민의 혈세를 갖다가 김종현과 몇사람의 입에 넣어줄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 범국민위관계자 여러분 지면을 할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전국유족회는 홈페이지조차도 페쇄시키고 유족회활동 자체를 외부에 공개 하기를 꺼립니다.

 모든 시민사회단체에서 전국유족회는 관변 어용단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2012.6.6.       (전) 한국전쟁 전국유족회    상임의장         오 원 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