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대선후보 정책이 비슷비슷, 인품과 삶의 역정 보고 뽑아야”

 

경향신문|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입력 2012.11.03 11:57

 

"통일에 돈이 들지만 그것은 부담비용이 아니라 투자비용"

2012년 11월 현재, 대한민국 곳곳에 가장 사진이 많이 붙어 있는 사람은 누굴까. 아이돌 스타도 아니고 대선후보들도 아닌 법륜스님이다. '법륜스님 희망세상 만들기-즉문즉설'이란 이름으로 전국 시·군·구에 11월 말까지 300회 연속 강연을 진행 중이어서 각 지역 문화회관 등 강연장이나 거리에 포스터와 현수막이 붙어 있다. 흥겨운 노래도 없고 경품도 안 주는 그 강연장에 시골마을에서도 항상 객석이 꽉 찰 만큼 인기다.

법륜스님은 대중들에게는 < 청춘콘서트 > 의 기획자, 안철수 후보의 멘토로 알려져 있고, 종교와 이념을 초월해 가장 많은 이들이 만나려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결혼도 못해보고 아이도 없는 스님이 쓴 < 엄마 수업 > < 스님의 주례사 > < 방황해도 괜찮아 > 도 베스트셀러다. 즉문즉설 시간에 참석한 이들은 스님이 해결사인 듯 "남편이 바람났어요" "중학생 아들이 말을 안 들어요" 등의 온갖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요즘은 < 새로운 100년, 가슴을 뛰게 하는 통일 이야기 > 란 책을 펴내 통일에 관한 강의와 북한주민 돕기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10월 31일 서울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열린 '2012 평화재단 창립 8주년 기념 대토론회-통일시대를 대비한 국가 혁신방향' 행사를 마친 법륜스님을 밤 10시, 서초동 평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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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서초동 평화재단에서 만난 법륜스님일요일도 없이 전국을 다니며 '희망세상 만들기'를 강행군하고 있다. 300회 대장정을 하는 이유가 있나.

"전엔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강의를 해왔다. 어느날 한 분이 '도시사람만 괴롭고 시골사람은 안 괴로운 줄 아는가'라는 전화를 걸어왔다. 맞는 말이다 싶어 지도를 펴보니 우리나라에 시·군·구가 251개더라. 울릉도·옹진군·신안군은 못가고 여기에 지방대학을 더해 300곳을 11월 30일까지 마칠 예정이다."

즉문즉설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무엇인가.


"자녀문제가 단연 1위다. 중·고생 자녀의 학업과 게임중독, 대학생 취업문제, 취직 안 하고 빈둥거리거나 결혼을 안 하는 것 등이 부모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둘째는 부부갈등이고, 세 번째는 부모님과의 갈등이다. 인간관계가 괴로움의 근본이다. 올 들어서는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여서 그런지 정치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떤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늘었다. 물론 사회문제도 많다. 관청 직원의 부당한 태도, 억울한 재판 등등…. 1회에 10여명의 질문을 받으니 3000여명의 문제를 들어주는 셈이다."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은 이들은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쿨하다' '명쾌하다' 등의 반응을 보인다. 종교분야가 아닌 육아문제, 사소한 개인사 문제를 그 자리에서 그처럼 빨리 답할 수 있는 비결이 뭔가.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 있으면 절로 현상이 다 보이는가.


"모든 인간의 행위나 사물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내 입장에서 보면 그른 일도 남의 입장에서는 옳은 일이다. 난 이론으로 설명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편 입장을 이해하도록 유도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져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부인은 남편이 자신이 열심히 간호해도 짜증을 부려 힘들다, 이혼해야 할지를 물었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중풍에 걸렸다면 남편이 어떻게 간병해주길 바라나, 혹은 당신이 남편 대신 아픈 환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간호하면서도 짜증을 들어주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물었다. 물론 환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불편한 쪽이 짜증을 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니 내가 건강한 것을 감사하는 기도를 하라고 답해줬다. 몸이 아프다는 이들에게도 일단 양방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아보고,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도 아프면 한의원에 가서 진맥을 받고, 그래도 증세가 사라지지 않으면 심인성이니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고 한다. 정치·사회·경제 등 각 분야에 대해서는 묻는 대로 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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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콘서트 > 의 기획자다, 하지만 청춘은 여전히 아프고 자살이나 취업률도 변함이 없다. 청춘이라서 아픈 게 아니라 이 사회 시스템이 그들을 아프게 만든 것인데, 학생들을 위로해주는 것만으로 해결이 될까. 현재 대통령 후보들도 전국투어를 하는데 유권자와 악수하는 것보다 정책을 만드는 게 시급한 게 아닌가.


"청춘콘서트를 처음 시작할 때는 어떤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 청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다 더 많은 이들이 강연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 설문조사를 해보니 안철수, 박경철, 김제동 등의 순으로 만나보고 싶어했다. 내가 직접 그들의 강의를 들어본 후에 재능기부, 즉 무료강연을 부탁했다. 정말 바쁜 이들인데 흔쾌히 응해 성인의 날 기념으로 첫 콘서트를 했는데 호응이 컸다. 그래서 지방까지 확대해서 하게 되었다. 우리 평화재단에서는 자원봉사자 동원 능력이 있고 지자체에서 행사장을 무료로 빌려주고 참석자들이 1000원부터 얼마건 십시일반 보시하는 돈으로 운영했다. 팸플릿이나 현수막을 거는 데만 비용이 들었다. 아마 외부 기획사에서 진행했다면 수십억원대의 프로젝트일텐데 선의와 정성으로 진행됐다."

청춘콘서트의 가장 큰 수혜자는 안철수씨가 아닌가. 대통령 후보가 되고 엄청난 지지를 받으니 말이다.


"수혜는 무슨? 정치에 끌려들어와 본인은 괴로워 죽겠다는데…."

그때 청춘콘서트에 함께 참여했던 김종인·윤여준씨는 모두 안 후보와 등을 돌렸다. 누가, 무엇이 문제인가.


"등을 돌린 게 아니라 서로 생각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소원해진 것 역시 안철수 교수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 전, 정치 입문을 하기 전의 일이다. 당시에 김종인 박사는 장차 이 나라의 지도자감을 찾고 있었다. 깨끗한 성품으로 재벌과도 거리를 두어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인물을 찾다가 안 교수에게 정치를 제안했다. 안 교수가 현실정치 참여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총선에도 안 나겠다고 하니 현실적인 대안으로 박근혜 후보에게 간 것이다. 정치인은 망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김 박사의 지론이다. 윤여준 전 장관은 안 교수가 '그분이 멘토라면 내게 멘토가 300여분 정도 된다'란 다소 실례되는 말을 해서 김정이 상한 것은 사실이나, 나중에 해명이 되어 감정은 풀렸다. 그러나 안철수 교수가 정치선언을 하기 전에 마침 문재인 후보가 국민통합하겠다며 도움을 청하니 그쪽으로 간 것이고…."

스님은 인터뷰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그건 설명이 필요하다. 기자들이 '안 후보가 정치경험이 없는데 대통령을 할 능력이 있겠는가'라고 묻기에 경험 없는 것이 꼭 단점은 아니라는 말을 했다. 만약 모든 것이 경험을 통해야 한다면 나 역시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키웠는데 어떻게 인생상담을 하며, 내가 직접 겪지 않은 역사문제를 어떻게 다루나. 또 무소속이라 정국을 이끌 수 없다는 질문에 대통령이 특정 정당이 아닌 무소속이라 불리한 면도 있겠으나, 오히려 양쪽을 잘 설득해서 치우치지 않는 통합의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기자들은 '법륜, 안 후보가 정치경험이 없어 더 유리' 등의 제목만 크게 뽑는다. 얼마 전 민주당에서도 초청특강을 했는데 난 당을 초월해 그저 조언해주는 위치에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스님을 안 후보의 멘토로 알고 있다. 최근 안 후보의 다운계약서 등의 문제와 모호한 발언으로 실망했다는 이들도 있다. 안 후보에 대한 믿음은 여전한가.


"멘토는 언론이 만든 자리다.(웃음) 대통령이 되려면 당연히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 단 검증이란 이름으로 근거없이 부도덕한 존재로 몰아가는 것, 가십성 정보를 흘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동안 여자문제 등 일부 언론에서 많은 오보를 했다. 물론 안 후보의 모호한 화법 때문에 오해를 받는 것도 있다. 또 평소 이미지가 너무 깨끗하고 맑아서 흙탕물이 한 방울만 튀어도 금방 더러워 보이는 게 아닐까."

얼마 전 만난 유시민 전 장관도 세계 정세나 경제상황이 더욱 악화할 것으로 예견하며 남북통일만이 우리나라의 평화와 경제발전의 해결책이라는 말을 했다. 스님도 새로운 100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통일이며, 그래서 다음 대통령의 역할과 자질이 중요하다고 역설해 왔다. 통일대통령으로서의 조건은 무엇인가.


"역사의식, 즉 이 시대의 흐름과 시대적 과제를 읽을 줄 아는 능력이다. 시대적 과제란 일제강점기엔 나라의 독립, 60·70년대엔 산업화, 80·90년대엔 민주화가 시대소명이었다. 지금 시대적 과제는 통일이다. 남북한 통일은 물론 남한의 남·남 통일도 중요하다. 남한 사회는 양극화 해소가 우선이다. 국가지도자로서 통일문제를 인식한다는 것은 동아시아 전체의 정세 변화를 읽고 미국과 중국의 세력 교체, 거기다 북한 내부 상황과 북한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파악하는 예측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눈과 세계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다음 대통령은 단순히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북한까지 포함한 전민족의 운명을 책임질 능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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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는 대통령의 리더십만큼 국민들의 팔로어십도 중요하지 않은가. 아직도 많은 이들이 북한 원조를 '내가 낸 세금을 빨갱이들에게 퍼부어준다'고 생각하거나, 경·조원 단위의 통일부담금에 대한 우려를 한다.


"통일은 남북한 7000만 민족의 문제다. 당연히 통일에 돈이 많이 들지만 그것들의 대부분은 부담비용만이 아니라 투자비용이다. 2000만 북한주민도 먹여살려야 할 대상일 뿐만이 아니라 값싼 노동력으로 보면 엄청난 자원이 아닌가. 산에 나무를 심는 것을 비용으로 볼 것인가 투자로 볼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북한 광산 개발, 철도사업 등으로 자원도 늘고 일자리 창출도 된다. 통일 후의 이익은 당연히 가장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양국 대표가 도장을 찍는 통일 이전에도 얼마든지 분위기를 마련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북한 사람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 인권문제는 선결조건으로 내걸면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범 수용소 문제를 먼저 내걸지 말고 여성과 아동, 장애인 등 북한법에 근거한 인권법에 지극한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제도개선하면 돕겠다가 아니라,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이나 약품 지원 등으로 신뢰를 쌓고 그들이 서서히 바뀌게 해야 한다. 그들의 자구노력을 바탕으로 우리가 협조해주는 일은 통일 이전에도 할 수 있다."

북한 내부의 소식이 국정원보다 먼저 전해질 만큼 북한 정보에 밝다고 알려져 있다.


"북한 정치상황이나 특수부대 등의 내막은 당연히 국정원이 먼저 안다. 북한 소식을 자주 접하는 것은 우리가 꾸준히 북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한 덕분이다. 일단 현재 한국에 온 탈북자가 2만5000여명이 되고, 중국 국경지대에도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많다. 또 외화벌이를 위해 외국에 나와 있는 북한인도 10만명이다. 그들이 각각 사돈의 팔촌까지 연결하면, 북한 노동당 내부문건까지 극비상황이 아닌 경우 유통이 되는 구조다. 우리는 이념과 종교를 초월해 인도적 차원에서 그들을 도왔기에 그들 또한 우리를 믿고 소식을 전한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워오듯 통일에도 희망이 보인다 "

희망세상을 만들려면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좋은 대통령을 뽑을지 유권자들에게도 즉설을 해달라.


"투표를 꼭 해야 한다. 최선의 후보가 없으면 차선이라도, 차선이 없다면 차악이라도 투표하자. 안 찍으면 최악의 후보가 당선된다. 다음은 이왕 하는 투표, 잘못을 저지르지 말자는 것이다. 국가지도자를 뽑는데 향우회장 뽑듯 지역감정 따지고, 신도회장도 아닌데 종교를 가리고, 동창회장도 아닌데 같은 학교 출신이라고 찍어서는 안 된다. 이번엔 후보들의 정책이 다 비슷비슷하다는데, 그렇다면 누가 더 신뢰할 수 있는 인품과 삶의 역정을 보였는지를 판단해 뽑아야 한다. 이번 선거 결과가 향후 우리 민족 100년의 운명을 가른다는 책임감을 갖고 투표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자."

고매한 스님들은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다" "오직 모를 뿐" 등의 선문답으로 때론 우리를 더 답답하고 모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법륜스님은 현실적이고 명료한 말로 귀와 마음을 편하게 해줘 이처럼 전국민의 인기를 얻는 것 같다. 하루에 3시간만 자고, 너무 바빠 치과에 갈 시간도 없다는 법륜스님이 부디 더 이상 치통으로 고생하지 않기를, 또 정치인들이 개인적 영달을 위해 스님을 괴롭히지 말기를….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스님의 즉설을 듣고 나 역시 법륜스님의 입장을 생각해 인터뷰를 빨리 끝냈다.

<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