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ressEngine ver.2

글 수 1,141

등록 :2015-11-12 19:33수정 :2015-11-12 22:53

시민들이 떠난 아이들 대신해
명찰·노란리본 단 가방 200여개 놓아
단원고 생존 학생 72명 시험 치러
유민아빠 “천국에 있는 아이들이 응원”
풀뿌리시민네트워크와 4·16연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2일 오후 4시16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5년 수능일 세월호 기억행동, 아이들의 책가방’ 행사에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추모하는 가방을 놓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풀뿌리시민네트워크와 4·16연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2일 오후 4시16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5년 수능일 세월호 기억행동, 아이들의 책가방’ 행사에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추모하는 가방을 놓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우리 아이도 오늘 수능시험장으로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2일 오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 ‘명예 3학년’ 교실.

시험장으로 가지 못한 엄마는 딸이 앉아 있던 책상에 엎드려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 또 다른 교실에서는 덥수룩한 수염이 얼굴을 뒤덮은 초췌한 모습의 아버지가 아들이 쓰던 교과서를 어루만지며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아이를 시험장으로 보내는 대신, 이들은 이날 오후 수원지법 안산지원 410호 법정에 설치된 ‘세월호 중계법정’에서 이준석 선장 등에 대한 대법원 선고 재판을 지켜봐야 했다.

같은 시각, 세월호 참사 당시 극적으로 탈출해 구조됐던 단원고 3학년 학생 72명은 ‘고통의 시간’을 뒤로한 채 수능을 치렀다.

생존자 75명 가운데 이날 수능에 응시한 72명은 후배들과 학부모·교사는 물론, 하늘로 떠나고 만 친구들의 엄마와 아빠의 격려와 응원 속에 시험장으로 향했다. 참사 이후 4개 반으로 나눠 공부해온 이들은 시험장마다 3~4명씩 나뉘어 시험을 치렀다. 경기도교육청 38지구 제13시험장인 안산 양지고에서는 16명이 시험을 치렀다.

몇몇 수험생들은 가방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의 노란색 리본을 달고 시험장에 들어섰다. ‘희생된 친구를 잊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듯했다. 1~2학년 후배 4명은 ‘단원고’, ‘수능 대박 기원’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아침 7시부터 응원전에 나섰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기나긴 단식투쟁을 했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비록 우리 아이들은 수능을 볼 수 없지만, 전국에 우리 유민이 친구들, 천국에 있는 아이들이 응원합니다”라고 적었다.

오후 4시16분. 서울 광화문광장에 책가방이 하나둘 놓이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로 떠난 단원고 학생(250명)들은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220여개의 가방으로 남았다. ‘2015년 수능일 세월호 기억행동, 아이들의 책가방’ 행사에서 시민들은 각자 준비한 가방을 반 순서대로 놓인 학생들 자리에 놓아두고, 가방에 학생의 이름이 적힌 단원고 명찰과 노란 리본을 달았다. 아직 세월호 안에 있는 실종 학생 4명의 자리엔 노란 종이배가 놓였다.

을지중 3학년 김건(15)군은 자신이 메던 가방과 집에 있던 가방을 챙겨, 이수연·이연화 학생 자리에 놓았다. 김군은 “국가가 형·누나들이 시험을 볼 수 있는 권리를 빼앗아 간 것 아닌가. 안타까운 마음에 가방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자리에 가방이 놓이는 것을 지켜보던 박예슬양의 아버지 박종범(49)씨는 “아이들이 있었다면 시험장에 태워다 줬을 텐데…. 아이들이 하늘에서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험 감독을 하고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안산/김기성, 박태우 기자 player009@hani.co.kr

번호
제목
글쓴이
1041 <금요일엔 돌아오렴>
[관리자]
2015-01-14 4653
1040 “박 대통령에게 ‘세월호 만남’ 더는 구걸않겠다”
[관리자]
2015-03-26 4654
1039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는 시간 / 하성란
[관리자]
2015-01-31 4655
1038 전주 고교생들, ‘세월호 유가족 십자가 순례단’ 맞아, 신부 수녀 시민 등 500여명 참여해 ‘거리 미사’ 올려
[관리자]
2014-08-11 4656
1037 '세월호 1년' 서울 초중고, 4월 13~17일 추모주간
[관리자]
2015-03-31 4656
1036 “덕하야, 아직 물속에 있는 친구들 도와주렴”
[관리자]
2014-06-19 4657
1035 항상 건강하고 의젓했던 나의 조카…너무도 크구나, 네가 떠난 빈자리
[관리자]
2014-07-25 4657
1034 [한겨레 프리즘] 잊지 않겠습니다 / 허호준
[관리자]
2014-07-30 4660
1033 어려운 이웃 돌보겠다던 속깊은 막내 보배로운 믿음, 천국서도 반짝이겠지
[관리자]
2014-07-10 4661
1032 4월16일 10시15분 ‘아직 객실’ 문자 4월30일 예매 뮤지컬 끝내 못보고…
[관리자]
2014-08-04 4662
1031 엄마 주름 마사지로 펴주겠다던 딸, 긍아! 그 아름다운 꿈 잃고 천사가 돼 왔구나
[관리자]
2014-07-09 4663
1030 침몰하던 그 시각 “사랑해요“ 마지막 문자…딱 한 번 볼 수 없겠니?
[관리자]
2014-12-18 4663
1029 <세월호참사> 가족대책위 "국회 본회의 열고 국정조사 추진해야"
[관리자]
2014-05-29 4665
1028 강하게 키우려 야단만 쳐서 미안해…사랑한다 말 못해 너무 미안해
[관리자]
2014-11-07 4667
1027 엄마의 눈물
[관리자]
2015-02-18 4668
1026 눈물 닦아주긴커녕…세월호 집회에 최루액 뿌린 경찰
[관리자]
2015-04-13 4668
1025 다시는 볼 수 없는 내새끼 마지막 전화왔을때 빨리 탈출하라 할걸…
[관리자]
2014-09-11 4669
1024 네가 그랬지 “난 사는 게 너무 행복해”…너 없는 가을이 슬프구나
[관리자]
2014-10-19 4669
1023 무기력하게 보낸 게 부끄럽고 미안해…네가 소중하단 말 차마 쓸 수 없구나
[관리자]
2014-11-10 4670
1022 “아빠 힘내세요~” 율동과 함께 불러줬지…힘들지만 살아볼게
[관리자]
2014-12-05 4671

자유게시판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