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05 15:31수정 : 2015.03.05 16:19

유해발굴 도중 희생자 가족 문영자(당시 7살)씨가 학살 당시 이곳으로 끌려와 죽었다는 아버지 문상국(당시 31살)씨의 증명사진을 들고 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공개한 사진에서 처형 직전 돌아보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하고 닮았다고 말했다. 대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국가는 무엇인가. 국가는 힘없는 국민에게 어떤 존재인가.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고 자유를 보장하고 외부의 잘못된 권력이나 폭력으로부터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닌가.

 

유해발굴 첫날인 2월 23일 오전 중장비로 지난 65년의슬픔과 고통을 겉어내고 있다. 대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유해발굴 기간 내내 유가족들은 현장을 찾아 발굴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대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그러나 미군정하에 태어난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국가란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가차없이 생각이 다른 국민을 죽여버렸다. 이승만 정권은 한강 이남으로 피신을 하면서 한강대교를 폭파했고 대전에서 머무르면서 대전형무소에 있던 제소자뿐만 아니라 정치범과 민간인들 중에 보도연맹관련 명단을 토대로 헌병대와 경찰이 4천여 명을 대전 산내면 골령골 근처에서 3차에 걸쳐 가차없이 죽였다.


유해발굴은 박선주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가 발굴단장으로 총괄은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이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팀장이 현장을 지켰고,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학생들과 충북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학생들이 구슬땀을 흘렸다. 대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비참하게 학살당한 희생자들은 유골들이 이리저리 엉키고 설켜서 온전한 형태로 발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대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죽은 이들 속엔 단지 동생이 북으로 월북했다는 이유로만 군 헌병대는 M1 소총으로 뒤에서 머리를 쏘아 죽였다. 억울하게 하소연 한번 하지 못하고 죽어간 영령들은 지난 65년 동안 해도 들지 않은 산골짝 계곡 땅속에 잠들지 못하고 썩어가고 있다. 당시 2살배기 어린 딸이 고희를 바라보면서 아버지 뼈라도 찾으려고 말라버린 눈물을 흘리며 계곡을 넘나든다. 뼈는 한동안 특이한 병에 효염이 있다며 누군가에 의해 가루가 되어 팔려나갔다는 증언도 나온다. 60년이 넘은 뼈들은 유해발굴단의 부드러운 붓으로도 부서질 정도로 많은 시간이 지났다.


희생지 뒷쪽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M1소총 탄두와 탄피가 두개골 근처에서 발굴되었다. 대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그나마 마른 모래알처럼 분쇄되지않고 온전한 형태로 발견된 뼈는 좀처럼 찾아내기 힘들다. 대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국가는 무엇 하느냐. 국가가 저지른 폭력과 과오를 힘없이 무참히 죽어간 그들의 자식들이 땅을 파고 뼈를 찾아내야 하는가. 그 자식들도 지난 삐뚤어진 역사 속에 어려움 겪어온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자손들이다.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전쟁 민간인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와 유족들의 한을 풀기 위해 발족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때 단지 생각이 다르고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내몰려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 12월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하고 해산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희생자의 아들인 이계성(76)씨도 돌아가신 아버지 이현열(당시 36세)씨의 유골을 찾기 위해 대나무 도구로 흙을 조심스럽게 파내고 있다. 대전/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유해발굴 도중에 어제 해 넣은 듯한 금니가 65년만에 햇볕을 보았다. 누구의 가족인지 알 수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대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위원회의 활동 기간을 연장해달라는 유가족들의 간곡한 호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가는 침묵했다. 그런 가운데 지난 2월23일부터 우리나라 최대 민간인 학살 터로 밝혀진 대전 산내면 골령골에서 시민사회주도로 유해 발굴을 시작했다.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등 총 19개의 대전지역 시민단체가 ‘한국전쟁기대전산내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해 공동조사단을 꾸렸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행위를 민간인들이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조사는 현장 발굴자료를 토대로 미국 육군정보부에서 비밀해제된 자료와 현장사진 18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국가는 침묵하고만 있을 일이 아니다.


유해발굴 도중에 살며시 드러난 이름모를 세분의 유골에 발굴단은 국화꽃을 드리우고 영혼을 달랬다. 대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국가는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가족들의 고통을 위로해야 한다. 그리고 지난 65년 동안 지하 땅속에서 떠돌고 있을 영혼들도 뿐만 아니라 봄바람에도 부서질 정도로 삭아버린 유해를 하루빨리 찾아내 유가족 품으로 돌려보내 져야 할 것이다. 유해발굴 현장에서 만난 한 유가족은 “우리는 대부분 한두 살이었던 어린 아이였다. 이젠 칠십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다. 잠깐 나갔다 오신다던 아버지는 그 뒤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아버지 얼굴도 모른다. 우리 1세대가 죽기 전 진실과 명예회복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라며 울먹였다.


대전/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