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8.21 20:35수정 : 2014.08.21 21:42
[잊지 않겠습니다]
김초예양은
안산 단원고 2학년 9반 김초예(17)양은 여동생 둘에게 엄마 같은 존재였다. 맞벌이로 바쁜 아빠와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의 식사와 간식을 꼬박꼬박 챙겼고 공부도 가르쳤다. 엄마에게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장을 보러 함께 다녔고, 엄마와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다.
초예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몸이 많이 허약했다. 환절기인 봄과 가을만 되면 병원에 다니기 바빴다. 엄마는 잘 먹어야 튼튼해진다며 아무리 바빠도 초예에게는 세 끼 밥과 간식을 챙겨줬다. 그 정성으로 초예는 더는 병원에 다니지 않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낯을 좀 가리는 편이었지만, 친해지기만 하면 장난도 잘 치는 밝은 성격이었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언어발달 장애아를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크면서는 “취업이 잘된다”며 꿈을 간호사로 정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4월15일 밤 “일찍 잔다”며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한 것이 마지막 인사가 됐다. 엄마는 다음날 아침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듣고 초예에게 수도 없이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초예는 세월호 사고가 난 지 10일째였던 4월25일 엄마의 품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경기도 화성 효원납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있다.
초예의 아빠와 엄마는 지금껏 직장에도 나가지 않고, 초예를 위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는 등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