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2.17 19:24

안애경 큐레이터.

[짬] 북유럽디자인 전시기획 전문가 안애경 큐레이터

미술계에서 6~7년 전부터 유행해온 ‘공공미술’. 예술가들이 퇴락한 마을에 들어가 벽화나 조형물 등을 만들어 쓰임새와 수명이 다한 마을을 재생하려는 시도다. 벽화의 페인트가 떨어져 갈 무렵 “공공미술은 없다. 다만 미술이 있을 뿐이다”라고 외친 이가 있다. 청계천, 세빛둥둥섬 또는 버스정류장, 쌈지공원 등등 예술행정가들이 공공디자인의 이름으로 유럽에서 벤치마킹해 온 것들이다. ‘4대강 프로젝트’는 그 압권인 셈이다. 라인강에서 착안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유람선을 띄우겠다는 발상이었다. 일찌감치 “그것은 껍데기 공공디자인”이라며 “그러려면 벤치마킹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은 이가 있다. 핀란드에 살며 한국에 북유럽 디자인을 소개해온 안애경 씨다.


현지에서 큐레이터·아티스트·아트디렉터로 불리는 그는 전시·공연·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해마다 북유럽 디자인을 소개하는 전시를 꾸려왔다. 이번에는 북유럽 디자인의 배경과 역사를 다룬 책 <소리 없는 질서>(마음산책)을 들고 찾아왔다.



핀란드 살며 흡수한 북유럽 예술문화
해마다 국내 전시회 열어 전파 앞장
“책임 피하고 공만 챙기는 관료 경험”

‘4대강’처럼 껍데기만 베끼는 공공미술
의미는 배우지 않고 겉만 흉내 ‘한심’
“명절이면 나누던 공동체 전통에 희망”


첫마디가 그랬다. 자신은 몇해 전 서울의 미술관에서 북유럽디자인 전시회를 열면서 세월호를 이미 겪었다고. 그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획자인 자신을 부리고 떠넘겨 책임을 회피하고는 그 결과는 자신들의 공적으로 삼더라고 했다. 사례를 하나 더 들었다. 핀란드에 있다 보면 한국에서 온 공무원이나 교사들을 안내하는 일을 자주 하는데, 한번은 초등학교 견학을 갔단다. 마침 학생들에게 인쇄된 자료를 돌리고 있었다. 교사는 학생들과 눈을 맞추면서 일일이 나눠주었다. 이를 본 한국 손님이 그러더란다. “그냥 뒤로 넘기면 되지, 시간 아깝게 뭘 그러느냐”고. 그는 “‘왜’를 간과한 채 껍데기만 수입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백날 해봤자 실패한다”고 말했다.


“학교는 지식을 전수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연습을 하는 곳입니다. 그들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사회로 내보내는 거죠. 세월호 아이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듣고 배가 침몰하는 순간까지 제자리에 머문 것은 그들 탓이 아니라 교육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한국의 학교가 산업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틀에 박힌 인간형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죠.”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어느 날 아침미팅 장소로 이동하다가 옹기종기 서 있는 고교생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바구니에는 빵이 가득했다. 지난밤에 자기네끼리 반죽하고 구운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록 밴드부터 색소폰, 기타를 연주하는 학생들과 ‘위 아 더 월드’를 부르며 하모니를 맞추는 학생들…. 그들은 그동안 쌓아온 실력을 길거리에서 마음껏 쏟아냈다. 에티오피아 여학생들이 동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엔지오(NGO) 캠페인에 수익금을 보태기 위한 행사였다. “그게 수업이었던 거예요. 한국에서도 그런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면 세월호 현장이 조금은 달라졌겠죠.”


급식도 수업의 연장이랬다. “온 집안 식구들이 따뜻한 끼니를 공유하고 밥상머리 교육이 이뤄지는 식탁이 학교에서도 재현됩니다. 교사와 학생이 같은 식탁, 같은 메뉴의 밥을 먹죠. 교사가 학생의 식습관을 관찰하는 자리가 되기도 합니다. 빨리 먹은 아이들도 느린 친구들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줍니다.” 무엇보다 일회용기나 식판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도자기로 만든 접시를 쓰게 함으로써 조신한 생활습관을 들이고 환경의 소중함을 체득하게 한다.


이러한 개념은 학교 건물 디자인에도 반영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교사와 학급은 큰 길, 작은 길 등 여러 개의 길로 연결돼요. 학교가 작은 거리인 거죠. 작은 길이 모이는 곳은 동아리 활동장이 되고 큰 길이 모이는 중심은 행사와 토론장이 되죠. 길의 끝은 교실이 되고 학교 밖의 실제 길과 이어집니다.” 주말이나 주중 저녁이 되면 학교는 주민들의 여가활동이나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장소로 바뀐다.

북유럽 이야기를 한참 하던 그는 하지만 세월호 참사나 어린이집 학대 사건으로 너무 절망하지 말자고 했다. 군대 조직을 일상화한 감시와 통제체제에다 이윤 극대화가 유일한 목표인 세계화가 덮치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밤이 깊으면 새벽이 멀지 않지 않으냐면서.


그는 답이 우리 안에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예전엔 한마을에서 어느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모두 알았어요. 네 자식, 내 자식 구별이 없었고 학교와 마을이 다르지 않았어요. 명절이면 각자 가져온 음식으로 푸짐한 공동식탁을 차렸죠. 그런 기억과 경험을 지닌 우리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도시에서 폐지를 줍고 있어요. 생략되고 버려진 그분들 세대를 오늘에 되살려야 합니다.”


그는 최근 국제적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에 주목했다. 말굽형 골짜기에 등고선 형태로 들어선 집들이 마을을 이룬 곳, 여러 개의 계단이 흘러내려 모이는 곳에 광장이 있고 파스텔 톤으로 동네의 색깔을 수렴한 것에 공동체의 숭고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며 우리가 지향할 미래라고 말했다.


그는 9~11월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노르딕 스피릿’ 전시에 이런 배경과 역사를 녹여 넣을 거라며 ‘파이팅’을 외쳤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